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국제정치
이명박 정부는 실용외교를 표방한다. 대일 외교에서도 역사문제와 같은 껄끄러운 쟁점으로 소모하기보다는 실속있는 성과를 올리겠다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실용외교라는 슬로건 이외에는 외교의 큰 틀이나 비전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익을 내는 것이 사명인 경영인 출신답게 능란한 교섭을 통해 구체적인 결과를 낼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한편에 있었다. 그러나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지금 성적표는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작년 여름 이래 공식 쟁점이 된 위안부 배상 문제를 둘러싸고는 일본 외교에 뒤흔들리고 당하기만 하는 것 같다. 물론 “1965년의 한일협정으로 모든 청구권 문제는 해결되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양국 협의에 응하지 않는 일본을 움직이기가 쉬운 과제는 아니다. 그러나 어려운 현장에서의 외교적 노력에 비해 정상외교가 갈팡질팡하면서 한국의 입장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 9일치 <아사히신문>을 통해 일본 정부 관계자가 13일부터 중국에서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 때에 위안부 배상 문제에 대한 일본 쪽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방침을 일단 철회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 이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물론 한국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본의 부당한 발언이며, 외교적으로도 실례되는 표현이다. 한국 정부 당국자도 “불쾌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발언이 이러한 책임전가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21일 <아사히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법적 문제가 아니라 인도적 문제로서 해결”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교토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작심”한 듯 위안부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3·1절 기념사를 통해 재차 일본의 결단을 촉구하면서, 한·일 양국 간에 물밑에서 외교 절충이 활발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라 이목을 끌었다. “인도적 문제”라는 표현에 일본이 반색을 한 것은 물론이다. 일본이 지금까지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면서 아시아여성기금 방식으로 타결을 추진할 때도 그 논리는 “인도적 문제”였다. “인도적 지원”이란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에 대한 지원”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나 여론이 납득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추측하건대 일본이 아시아여성기금과 비슷한 “해결책”을 제시하자 한국 정부도 이를 차마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위안부 문제는 제대로 거론도 되지 못한 반면, 최근 일본이 요구해 온 한-일 안보협력은 공식화될 조짐이다. 8일 일본 다나카 나오키 방위상은 이달 하순 김관진 국방부 장관 방일 때에 군사정보보호협정 등을 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사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좌초한 가운데, 안보협력만이 선행되는 형국이다. 그것도 국회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방위당국 간의 양해각서 형식을 취한다고 한다. 한-일 안보협력에 적극적인 이명박 정부 임기 안에 실현시키려고 서두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에 대응해 한·일 양국이 전략적 협조체제를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를 위해서도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청산을 통해 양국 사회 간에 좀더 깊은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외교와 안전보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과제에 대해, 방위당국이 독주하는 졸속은 문민통제라는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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