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권 논설위원
얼마 전 페이스북에 눈길을 끄는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서울대 총동창회가 발간하는 <서울대 동창회보>의 5월호 1면 사진이다. ‘제19대 국회의원에 동문 132명 당선!’이라는 굵은 제목 아래 132명의 얼굴이 실려 있었다.
조금 낯뜨거웠다. 아무리 학교 동창회 소식지라지만, 동창 의원의 얼굴을 모두 실어가며 ‘세 과시’를 하는 건 낡은 행태로 비쳤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다 궁금증이 일었다. 132명이면 전체 의원 300명의 44%인데, 너무 많지 않나? 인터넷으로 ‘서울대 동창회보’를 검색했다. 사정은 이렇다. 서울대 학부 출신 79명, 대학원 출신 13명, 특별과정 출신 40명을 더한 숫자다. 특별과정은 법대 최고지도자과정(ALP), 최고경영자과정(AMP) 등을 말한다. 동창회보는 18대 국회에선 동창 의원이 157명으로 ‘단독 과반’이었고 전했다. 아쉬워하는 기색이 묻어났다.
내친김에 ‘고려대 교우회보’를 확인해보니, 79명의 교우가 당선돼 26.3%를 차지했단다. 학부 출신이 25명이고 대학원 출신이 54명이다. 18대 국회의 72명보다 7명이 늘었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연세대 동문회는 동문 의원 명단을 인터넷이나 동문회보를 통해 공개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문 의원을 각별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연세대 동문회는 19대 국회 개원 전날인 5월29일 롯데호텔에서 동문 의원 축하연을 열었다. 연세대 쪽에 확인한 결과, 학부 출신 24명에 대학원(고위자과정 포함) 출신 35명 등 59명이 동문 의원이었다.
세 대학이 동창, 교우, 동문이라고 주장하는 의원을 모두 더하면 270명으로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서로 겹치는 의원은 한 대학으로만 쳐도 205명(68.3%)에 달했다. 19대 의원 10명 중 7명가량이 이른바 ‘스카이’(SKY) 울타리 안에 발을 딛고 있는 셈이다. 18대 국회보다 줄었다는데도 이 정도다.
이건 정상이라 보기 어렵다. 행정, 법조, 기업 등 여러 영역에서 ‘스카이 독식’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국회에서도 스카이 패권구조가 되풀이되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국회는 다양한 사회계층의 이해관계 충돌을 조정하는 공간인데, 그 구성 자체가 학연 등에서 왜곡된다면 제구실을 기대하기 힘들다. 2011학년도에 수능시험을 친 응시자는 66만8991명인 데 반해 스카이 입학생은 1만1594명으로 수능 시험생의 1.7%에 불과했다. 스카이를 제외한 전국의 4년제 대학만도 200곳이 넘는다. 그런데도 전국 246개 지역 선거구 중에서 서울의 스카이와 학연이 있는 당선자가 182명(74.0%)이나 됐다. 이런 구조 아래서 사교육 광풍과 입시전쟁 해소, 지방분권화, 국토 균형발전 등이 실현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여 동안 스카이는 결코 자랑할 만한 간판이 아니었다. 이 정부에서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권력형 비리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스카이 출신이었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벅찰 정도다. 이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동안 행정부를 견제할 책임을 진 18대 국회는 무엇을 했는가. 동문이라는 집단주의에 취해 제 할 일에 소홀했던 것은 아닌가.
고개를 수그리고 겸손해야 할 마당에 동문 의원 수 부풀리기에 열을 올리고 축배의 잔을 쳐드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오늘은 19대 국회의 첫날, 300명 의원 모두가 학연주의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자신과 약속했으면 좋겠다. 특히 스카이 의원들이.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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