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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지석의 말과 소통] 체제교체와 소통

등록 2012-05-29 19:20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지난주에 서거 3주기를 맞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새 시대의 맏이가 되고 싶었으나 구시대의 막내가 됐다’고 한 바 있다. 임기 중반의 발언임을 고려하면 시대의 냉엄함을 비교적 일찍 깨달은 셈이다. 하지만 그가 구시대의 막내였다면 차라리 좋았겠다. 당연히 끝났어야 할 구시대가 아직도 꼬리를 감추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현실은 분명하다. 지구촌 전체로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파열에 따른 고통스런 조정이 몇해째 계속되고 있다. 긴축을 하든, 돈을 풀어 성장을 꾀하든, 절대다수의 보통사람을 배제하는 정책 기조와 금융자본주의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위기는 극복되기 어렵다. 1930년대 대공황의 폐허 위에서 복지국가 자본주의가 태어났듯이, 임기응변만이 아니라 새 밑그림 위에 새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스 사람들의 고난은 지구촌 전체의 것이다.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는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고도성장기는 이미 1990년 중반에 끝났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지난 10여년 동안 과거의 향수에 기댄 고도성장 담론에만 매달려왔다. 그 결과가 고용·교육·주거·복지·가계부채 등의 각종 불안이고,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사회다. 특히 우리 젊은이들은 풍요의 시대에 태어나 결핍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역설을 실감하고 있다.

최근 구체제의 종말을 보여주는 두 가지 정치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와 권위적 개발주의를 결합했던 이명박 정권의 철저한 파탄이다. 말기에 힘이 빠지는 정도를 넘어서, 여권에서조차 청산돼야 할 정권으로 치부된다. 남은 것은 민간인 불법사찰과 ‘영포라인’ 등으로 상징되는 권력의 찌꺼기뿐이다. 다른 하나는 양지쪽으로 나오자마자 여론의 장벽에 부닥친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의 패권주의와 정부·여당의 공안몰이 행태다. 구당권파 스스로는 진보를 얘기하지만 과거 자신들이 맞서 싸웠던 권위주의 정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를 빌미로 한 공안몰이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큰 정치변화 이후에 사회경제적 체제교체가 뒤따랐다. 한국전쟁 종결과 함께 만들어진 정치구조(53년 체제)는 권위적 개발국가 체제로 이어졌고, 자생적 민주화를 이뤄낸 87년 체제는 불행하게도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의 바탕이 됐다. ‘신자유주의 이후 체제’를 성공적으로 구축하려면 정치적 변화가 먼저 필요하고, 그에 앞서 청사진에 해당하는 ‘2013년 체제’ 논의를 더 구체화해야 한다. 경제·복지 분야의 개혁과제를 제시한 <리셋 코리아>라는 책이 좋은 보기다.

정치는 국민의 희망을 이루고 시대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담론과 주체를 조직화하는 과정이다. 특히 민주주의에서는 개개인의 자발적 참여가 권력의 원천이므로 원활한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 소통은 구체제와 새 체제를 가르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권과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는 소통을 가볍게 여기는 점에서도 구체제에 속한다.

소통은 말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타자에 대한 책임을 중시한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말에 의미를 주는 것은 말함”이며 “말은 되풀이될 수 있지만 말함은 그 되풀이되는 말에 새 의미를 부여한다”고 했다. 새 체제를 만들어나가려면 나의 고통을 전제로 상대의 노력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함께 바뀌어나가는 ‘문화혁명’이 가능하게 된다. 새 체제를 지향하는 분명한 ‘말함’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까닭이다.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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