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민주통합당 부설 민주정책연구원의 한상익 연구위원이라는 분이 얼마 전 ‘말과 정치-내 언어로 말하기’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일부를 소개하되 나의 표현과 해석을 섞겠다. 똑같이 정당 계파를 다루는 언어지만 ‘친박-친이’라는 어휘 구성과 ‘친노-비노’는 의도와 의미가 많이 다르다. 친박 어휘는 박근혜 계파를 이명박 정부와 구별해준다. 새누리당의 인상을 좋게 만드는 긍정적인 언어다. 친박 국회의원들이 당당하게 “친박”을 자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다.
반면에 친노-비노는 당내 권력다툼을 반영하는 부정적인 언어다. 친이가 친박을 때리기 위해 친박이라는 언어를 써먹지 않는 데 비해, 친노라는 언어는 비노가 친노를 때리는 도구가 되고 있다. 가령 친노로 일컬어지는 정치인들은 절대 스스로를 친노라고 부르지 않는다. 노무현뿐 아니라 김대중을 함께 계승함을 주장해 화살을 피하려 하기도 한다. 시민들 사이에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가 나쁘지 않은데, 유독 정치권에선 친노란 말이 낙인찍기로 받아들여지는 현상도 특이하다. 아무튼 친박이란 말은 쓰면 쓸수록 새누리당한테 보탬이 되는 반면에, 친노란 말은 계파간 대립과 상처를 키우고 야당의 분열을 가속화시키는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사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친노-비노에 얽힌 분열의 역사는 깊다. 2002년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가 지지율이 떨어졌다. 이때 당내에서 후보 교체까지 적극적으로 주장한 사람들을 반노, 중간에 선 듯하면서 반노를 은근슬쩍 거드는 세력을 비노라고 불렀다. 조·중·동이 친노, 비노, 반노 어휘를 적극적으로 퍼뜨렸고, 그 정당의 많은 사람들이 별생각 없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 이 언어는 개혁진보 성향 후보를 고립시키고 진영을 분열시키는 효과를 냈다.
민주당 계열 정치세력은 2007년 대선 국면에 최악의 분열을 겪었다. 노무현 정부가 여론의 지지를 잃은 가운데 집권당은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중도개혁통합신당, 민주당, 중도통합민주당, 대통합민주신당, 다시 민주당 등등 명멸한 정당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다. 친노-비노는 그런 사분오열 과정을 관통한 으뜸 열쇳말이었다.
요즘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친노-비노 구도가 다시 전면에 떠올랐다. 비노는 친노를 때리고, 친노는 친노 아니라고 해명하기에 급급하고…. 또 하나의 쟁점은 특정 정치인들의 연대가 담합이냐 단합이냐는 것이다. 이것 말고는 다른 구체적인 쟁점이 아예 없다. 정권교체의 방략을 놓고 활발한 토론을 기대했던 시민들한테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꼴이다.
앞서 소개한 글도 토대로 삼고 있지만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 이론은 한국 정치를 분석하는 데 여전히 유용하다. 레이코프는 미국 민주당이 공화당한테 담론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민주당원들이 자기 진영의 발등을 찍는 언어를 피하고 내 힘을 보태주는 언어를 잘 골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상대 진영이 구사하는 언어 이면의 숨은 의도와 이해관계를 밝혀낼 필요성을 제기했다.
요즘 대표적인 정치언어는 친노냐 비노냐, 담합이냐 단합이냐, 당권파냐 비당권파냐(통합진보당), 종북이냐 아니냐로 간추려진다. 여기에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야권의 분열과 대립을 깊게 하는 언어라는 점이다. 조중동이 열성적으로 퍼뜨린다는 점도 있다. 야권 내부 쟁점이 있어도 덮고 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견이 무엇 때문인지 사실을 규명하고 노선을 바로잡기 위한 논쟁은 당연히 해야 한다. 다만 낙인찍기가 아니라 충실한 토론을 하려면 언어 선택을 좀더 세심하게 하면 좋겠다. 정치에서 말의 힘은 세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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