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
노대법원장의 정년퇴임이 다가오자 법관회의가 소집됐다.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할 차기 대법원장-대법관이 아니라!-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대법관 전원과 고등법원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기서 압도적 다수표를 얻은 한 전직 대법관이 후보자로 제청됐다.
그러나 그를 마뜩잖게 여긴 대통령은 두달 가까이 ‘묵언시위’를 벌이다 기어이 거부를 하고 나섰다. 내친김에 특정인을 거명하면서 “이분을 대법원장으로 제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친서까지 법관회의에 보냈다. 그럼에도 집권 여당의 도당 위원장을 지낸 이 인사를 도저히 사법부의 수장으로 맞아들일 수 없었던 법관회의에선 대법원장 후보를 새로 뽑아 대통령에게 들이밀었다.
‘자유당 시절’인 1957~58년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퇴임하고 조용순씨가 제2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하기까지의 소략한 전말이다. 당시 헌법에도 지금과 비슷하게 대법원장 임명은 대통령이, 승인(동의)은 국회가 하도록 정해져 있었지만, “대법원장의 보직은… 법관회의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이를 행한다”고 한 법원조직법이 있어 오늘날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 전개됐던 것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비춰 보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대법원장을 ‘낙점’하는 지금의 방식보다 이승만 정권 시절이 외려 더 민주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엔 대법관 제청권도 대법원장 ‘개인’이 아니라 의결권을 지닌 법관회의에 있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인선 절차가 지금의 모습으로 ‘퇴행’한 것은 종신 집권을 꿈꾸던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12월 유신헌법을 공포하면서다. 이때부터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그냥’ 임명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픽업’된 대법원장은 다시 청와대의 의중을 헤아려 대법관들을 제청했다. 법원조직법의 법관회의 관련 조항은 전면 삭제됐다. 여당이 늘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한 국회에서 임명 동의 절차는 요식행위 이상일 수 없었다. 6월 민주항쟁의 소산인 1988년 헌법 개정 때도 이 문제는 바로잡아지지 않았다.
연원으로 보나 현실로 보나 지금의 대법원 구성 방식은 가뜩이나 제왕적인 대통령 권력의 연장으로 비친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임기 후반인 이명박 정부 들어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사건 처리, 대법관 인선 등에서 보여준 굴신과 퇴보는 대통령의 힘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대통령이 임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주문했던 축은, 이를테면 쇠귀에 대고 경전을 읊은 셈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선의 혹은 선의의 대통령을 고대하며 하염없이 기다릴 요량이 아니라면, 차제에 대법원 구성 방식의 ‘교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 공론화의 적기는, 다음 대통령을 뽑는 올해일 듯하다. 지난해 법원조직법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신설됐는데, 거기에 추가로 ‘대법원장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하고, 이 위원회의 참여 범위도 법조계에서 시민사회로 크게 넓혀 애초에 사법부의 다양성을 추구할 만한 인사를 대법원장 후보로 추천하도록 하는 게 어떨까.
예의 그 자유당 시절, 전쟁 통에 부산으로 피난을 간 대법관 몇몇이 동래 온천에서 한잔씩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그만 야간 통금에 걸렸던 모양이다. 취조하듯 신분을 캐묻는 경찰관에게 “우린 대법원에 있는 사람들이오” 했더니, 돌아온 답이 걸작이었다고 한다. “대법원이 어디에 있는 절입니까.” 그로부터 60여년, 대법원장이 대표하는 사법부의 영향력은 사람들이 의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커져 있고, 또한 구체적이다. 대통령 1인에게 전적으로 대법원장 인선을 맡겨놓을 수 없는 이유다.
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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