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편집3팀장
유럽발 경제위기로 ‘퍼펙트 스톰’ 불안이 커졌다.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세계경제의 미래를 예언하며 쓴 뒤 ‘공포의 경제’를 빗댄 상징처럼 됐다. 원래 이 용어는 2000년에 개봉된 조지 클루니 주연의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황새치잡이 선원들의 태풍에 맞선 사투를 그리고 있다. 허리케인이 또다른 태풍과 만나 대형 폭풍을 일으킨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의 종북몰이는 가히 2012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퍼펙트 스톰’이다. 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이라는 본질은 간데없고 민주당 의원들까지 끌어들여 “국가관을 밝히라”며 사상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과거의 행적을 들춰 자유민주주의의 적인 양 낙인찍기에 바쁘다. 색깔론은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 폭풍으로 점점 커가고 있다.
폭풍은 열대저기압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저기압이 습한 대기를 만나면 바람이 그 공기를 빨아들여 세기를 키우며 위력을 발휘한다. 종북몰이 또한 냉전적 사고가 여전히 통하는 척박한 사회적 토양이 없으면 설 자리가 없다. 한국 사회를 집어삼킨 저기압의 기운은 어디서 발원한 것일까.
먼저 수구세력의 재집권 바람이다. 욕망이 강한 만큼 야권연대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집권에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그만큼 크다. 야권연대의 약한 고리가 이념적 차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 그들에게 진보당 사태는 사상검증을 벼르고 있던 참에 만난 사냥감이다.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동시에 야권을 분열시키기에 이만한 먹잇감이 있겠는가.
둘째,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로 유력한 박근혜의 아킬레스건인 ‘박정희의 유산’을 방어할 필요다. “박정희 때가 차라리 좋았어”라며 보수층의 향수를 자극하면 된다. “문제는 안보야”라며 선제공격을 펴기에 ‘종북몰이’는 강력한 무기다. 진보당 사태의 본질과 무관한 ‘종북’으로 문제를 확전시키는 데는 이런 밑그림이 그려져 있다. ‘진보는 종북’이란 불온한 딱지 붙이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배회하는 유령이다. 선거를 앞두고 걸핏하면 간첩단, 조직 사건을 터뜨려온 과거가 오버랩된다.
셋째, 대선 당락의 키를 쥘 수도 있는 중도층 공략이다. 진보로 기울 가능성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보수층으로 끌어들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지난 총선 때 범보수와 범진보가 51 대 49로 정당득표율을 양분한 구도가 재연된다면 박빙승부가 점쳐진다. 득표율 격차 2%포인트, 50만표의 향방이 중요해진다.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39만표 차,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57만표 차로 이회창 후보를 꺾은 선례가 있다. 새누리당으로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일 것이다.
종북몰이에 황폐화된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할 따뜻한 복지는 뒷전에 밀어놓을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겁박하는 권력의 오만함에 맞서 정의와 상식을 꽃피우기 위해 민주주의적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퍼펙트 스톰> 영화의 결말은 비극이다. 선원들이 폭풍의 위력을 뒤늦게 깨닫고 배의 방향을 돌리지만 밀려오는 폭풍 앞에 그만 깊은 해저로 침몰하고 만다. 2012년 대한민국을 휘감은 ‘퍼펙트 스톰’의 결말은 어떻게 날까.
김용철 편집3팀장yckim2@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대학생과 재수생 숫자도 ‘국가기밀’이었다?
■ “한기호 발언, 어떤 입장?” 이외수에 불똥
■ 전두환 ‘수백억 부자’ 자녀들에 추징금 못받나?
■ 사상 최대 ‘1조4천억원’ 주무른 환치기 일당 검거
■ 잘라진 금강산 길 앞에서 유아용 군복을 팔고…
■ 대학생과 재수생 숫자도 ‘국가기밀’이었다?
■ “한기호 발언, 어떤 입장?” 이외수에 불똥
■ 전두환 ‘수백억 부자’ 자녀들에 추징금 못받나?
■ 사상 최대 ‘1조4천억원’ 주무른 환치기 일당 검거
■ 잘라진 금강산 길 앞에서 유아용 군복을 팔고…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