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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앗살라무 알라이쿰! / 조일준

등록 2012-06-24 19:24

조일준 국제부 기자
조일준 국제부 기자
#1. 2010년 가을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의 몇 나라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기자 연수 프로그램이었다. 인도네시아의 한국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면서, 히잡을 쓴 여성 종업원에게 “앗살라무 알라이쿰” 하고 인사말을 건넸다. 고마움과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인도네시아는 2억3740만 인구의 88%가 무슬림인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일행은 깜짝 놀랐다. 주변의 모든 종업원들이 일제히 환한 미소로 “와 알라이쿰 앗살람!” 하는 게 아닌가. 마치 합창이라도 하듯 낭랑한 화음이 식당에 울려퍼졌다.

#2. 2009년 6월 버락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이집트 카이로대학교에서 전세계 15억 무슬림에게 역사적인 연설을 했다. 이슬람권과 서구가 갈등을 접고 평화 공존의 시대를 열자는 메시지였다. 오바마는 연설 앞부분을 “앗살라무 알라이쿰”이란 인사말로 장식했다. 대강당을 가득 메운 3000여명의 청중에게서 우레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53분간의 연설 동안 42차례나 이어질 박수의 첫 물꼬였다.

“앗살라무 알라이쿰”은 아랍어이지만 전세계 무슬림의 공통 인사말로 쓰인다. “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이란 뜻이다. 본디 이 뒤에 “와 라흐마툴라히 와 바라카투후”(알라의 자비와 축북도 함께하기를)라는 좀더 긴 인사말이 더 있지만 흔히 줄여서 앞부분만 한다.

이슬람교의 발원지인 메디나와 메카는 척박한 사막지대여서 유목과 중개무역으로 흥망성쇠했다. 부족간 분쟁과 외세의 침탈이 잦은 탓에 더 평화가 간절했는지도 모르겠다. 유대 민족의 히브리어 인사말 “샬롬”에도 평화란 뜻이 있다. 아랍어 ‘살람’과 히브리어 ‘샬롬’은 고대 아시리아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셈족 계통의 아람어 ‘살라무’(완벽한, 탈이 없는, 보상받은, 조화로운)가 어원이다. 영어 ‘peace’의 어원인 로마어 ‘팍스’(pax) 역시 ‘평화’, ‘협약’, ‘조화’란 뜻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평화’를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한 상태”로 정의한다. 그러나 갈등과 폭력이 없다고 평화가 찾아오는 건 아니다. 현대 평화학에선 평화를 “폭력적 갈등이 없이 조화로운 상태”에서 더 나아가 “개인, 집단간의 건강한 관계, 사회경제적 복지에 의한 번영, 평등의 구현, 모두의 진정한 이익에 복무하는 정치적 질서”로 해석한다. 노르웨이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는 것”까지를 평화로 보는 ‘적극적 평화’ 이론을 주창했다.

개인의 내면적 평화는 사욕을 버리고 수양을 하면 얻을 수 있다. 타자와의 관계로 형성되는 집단의 평화는 좀 다르다. 공동체 안에선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정의가, 집단끼리는 상생과 공동번영이 필수적이다. 정의와 공존이 없는 평화는 강압된 질서로 포장됐으나 시한폭탄이 내장된 거짓 평화일 뿐이다. 멀리는 시리아 사태와 이집트 혁명이, 가까이는 한반도의 분단 현실과 우리 사회의 갈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오늘은 한국전쟁이 터진 지 꼭 62주년이다. 포성은 멎었지만 전쟁은 공식적으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전임 정부들이 쌓아놓은 최소한의 신뢰와 협력 체제마저 허물고 남북관계를 완전히 파탄냈다. 북한의 3대 세습 권력으로 갓 출범한 김정은 체제도 남북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아직 불분명하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같은 대치가 계속된다면 어느 한쪽도 안정적인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분쟁의 고통을 겪는 한반도와 지구촌의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절실하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조일준 국제부 기자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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