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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불편한 진실⑦ 한-일 안보협력 / 오태규

등록 2012-07-05 19:14수정 2012-07-05 20:30

오태규 논설위원
오태규 논설위원
이명박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얼렁뚱땅 해치우려다 화를 자초했다. 너무 예민한 문제를 너무 거칠게 다루는 과정에서 일어난 참사다.

나라말과 이름까지 빼앗을 정도로 잔혹했던 식민통치와 그에 대한 생생한 기억, 진정성 없는 사과와 계속되는 역사왜곡, 독도 영유권 갈등.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일본과 어찌 ‘군사’라는 이름이 담긴 협정을 맺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이번 사태를 가로지르는 기본 정서다. 정부가 협정의 이름에서 군사라는 단어를 들어낸 것도 사안의 폭발성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번 일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았고, 절차상으로 최악이었다. 시기의 부적절성에 대해선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일본군 위안부와 징용 피해자에 대한 우리나라 사법부의 전향적인 판결이 잇달아 나오고, 그에 대해 일본 쪽이 전혀 수용할 태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때라는 점이다. 더욱이 얼마 전엔 일본의 한 극우 인사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앞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정신분열적 말뚝 테러를 가하면서 잠자는 반일감정에 불을 지펴놓은 터다.

둘째는 미국이 중국 견제 차원에서 한-일 안보협력을 압박하는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아시아로의 귀환’을 내세운 미국은 북쪽의 일본에서부터 남쪽의 오스트레일리아·인도까지 줄을 이어 중국을 포위하려는 전략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참에 미국으로선 동맹인 우리나라와 일본이 과거사로 으르렁대며 대중 포위망에 균열을 내는 걸 바라만 보고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2+2)에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명문화한 공동성명을 낸 데 이어 제주 남방 해상에서 한-미-일 최초의 연합군사훈련을 한 것과 이번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추진을 떼어 볼 수 없는 이유다.

절차에서 정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협정의 내용이 별게 아니라고 하면서 협정을 별것으로 만든 건 정부의 도둑 같은 일처리 방식이었다. 이런 식의 일처리가, 미국의 압력을 받아 한반도에 일본이 다시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주고, 냉전 대결구도를 되살려 우리나라를 대중국 견제의 최전선으로 내몰고 있다는 해석에 힘을 실어줬다. 사실이라면 협정을 폐기해야 마땅하고, 아니라면 한심한 일처리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과거사 갈등 때문에 한-일 간엔 안보협력의 ‘안’ 자도 꺼내선 안 된다는 극단적 생각이 아니라면, 이번 사태가 한-일 안보협력의 필요성과 한계에 대한 공론화의 계기를 마련해준 것까지 간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한계에 대해선, 과거사와 영토 갈등이 존재하는 한 군사동맹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필요성과 수준인데, 그것은 안보협력의 방향과 밀접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다. 즉 협력의 방향이 북을 압박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확신과 비전을 주지 못하는 안보협력은 정서나 논리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아시아에서 경제 선진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한-일 두 나라가 지역 및 세계 평화에 함께 공헌할 일은 수없이 많다. 또 그래야 옳다. 안보협력도 그중의 한 항목임이 분명하다. 과거사에도 불구하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문제지만 과거사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앞으로 한-일 안보협력의 필요성과 수준도 그 사이에서 치열한 고민을 통해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오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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