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국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에서 한-일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한-일 군사협력은 이 양자협력의 범주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일제 침략의 경험이 우리에게는 아직 살아있는 역사이며, 그 패악의 대가로 군사력 보유에 제한을 받고 있는 일본한테 우리가 한치라도 자위대 활동 강화의 명분을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달이 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 협정은 유해무익에 가깝다. 북한 핵 등 대북 정보와 관련해서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정보자산을 구비한 미국과 연합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다. 일본과 정보교환을 통해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유의미한 군사정보가 있기 어렵다. 더욱이 우리가 상대하는 북한은 핵개발은 하고 있지만 인공위성도 조기경보기도 없고, 이렇다 할 음성정보 채집능력도 갖추지 못한 낙후한 군사국가다.
반면에 한-일 군사협력은 동북아 안보정세의 핵심 변수인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한다. 지금 동북아에서 필요한 것은 동맹질서를 극복한 다자안보협력체제인데, 미국의 강력한 희망 아래 추진된 한-일 군사협력은 오히려 한·미·일을 묶어 중국에 대항하는 틀을 지향함으로써 새로운 안보갈등의 소지를 만든다. 혹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일 군사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나 위험한 발상이다. 한-중 교역이 한-일 교역을 두 배 이상 압도하는 현실에서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과 군사적으로 손을 잡자는 것은 나라를 망치자는 것이다. “안보는 미국과 하고 경제는 중국과 하면 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으나 철없는 생각이다. 경제적 이익이 있는 곳에 안보적 이해도 발생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처럼 한-일 군사협력이 불가한 이유는 명백하지만 나는 또다른 이유로 한-일 군사협력을 반대한다. 일본 국민의 신민(臣民)적 성향과 우리 관료집단의 안일한 대일관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일제 전범의 위패가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고이즈미 총리의 참배가 동북아 외교안보정세를 뒤흔들었다. 정부는 고이즈미의 신사참배를 규탄하고 중지를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그때 만난 일본 정치인과 고위 관료 대부분은 자신도 신사참배에 반대하지만 고이즈미의 고집이 워낙 세서 말릴 수 없다고 했다. 일본의 지식인이나 시민사회 역시 개탄하면서도 반응은 같았다. 그때 나는 진정 두려운 것은 식민통치를 미화하는 일본 정치인들이 아니라 그 행동을 방치하거나 수용하는 일본 국민이라고 느꼈다. 나라를 대표하는 총리가 전범국가인 일본이 해서는 안 되는 중차대한 외교적 반칙행위를 하는 것을 지도자 개인의 ‘고집’쯤으로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두려웠다. 일본 국민은 여전히 천황제 아래서 신민적인 정치문화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지도자의 선동에 따라서 언제 다시 군국주의적 포퓰리즘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한·미 국방부가 공동의 동북아 정세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었다. 주변국의 미래 잠재위협을 서술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미국 쪽 초안에 유독 일본이 빠져 있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독도를 두고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상황인데 미래 잠재적 위협에서 일본을 제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반대하였다. 이 보고서가 공동의 미래 전략 구축의 토대가 될지도 모를 상황이기 때문에 특히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때 국가안보회의는 미국을 설득하기 전에 정부가 가급적 미국의 입장을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국방부를 먼저 설득해야 했다. 이를 통해 우리 관료들이 미·일로부터 제기되는 한-일 군사협력의 복합적인 의미를 국익 관점에서 제대로 읽어 내는 대일관과 대처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경험했다. 이번 군사협정 체결 시도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나는 모든 종류의 한-일 군사협력이 다 불가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누구를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잠재적 갈등세력 간에 전쟁이나 분쟁의 가능성을 막기 위한 동아시아 공동안보의 틀에서 이루어지는 협력은 가능할 것이다. 남북한과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이 군비통제 지향의 다자안보협력을 실현해 나가는 궤도 위에서 말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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