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현 경희대 건축과 교수
누구나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친구가 했던 얘기가 농담인 줄 알고 실컷 웃었는데 그의 표정을 보고 진담임을 깨닫고 엄청나게 놀라는 경우이다. 역사가 비극 그리고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유명한 말이 있는데, 이 경우는 두 가지가 짧은 찰나에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새달 29일부터 열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한국관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주자들이 대형 설계사무실이라는 얘기를 듣고, 저축은행과 관련된 건설계의 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 혹은 건축계를 황폐하게 만든 일괄수주 방식이나 장기민자유치 제도를 문화인류학적 차원에서 진단하려는 줄 알았다. 실제로 고 정기용 건축가가 2004년에 ‘방의 도시’라는 주제로 한국 사회의 고유성을 기획하여 호평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형 설계사무실이 한국 건축문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기 때문에 발언의 장을 줘야 한다는 묘한 취지를 듣게 되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맞이했다.
한국관의 ‘건축을 걷다’라는 주제는 다분히 스위스 태생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산책로’를 연상시키고, 건축이 커다란 작품이며 내부에 공간을 지니고 사람과 소통하는 면모를 강조했던 2년 전 비엔날레의 주제 ‘건축 안의 사람들’의 재방송 같기도 하다. 참고로 올해 영국 건축가 치퍼필드가 정한 주제는 ‘공통의 지반’(common ground)이다. 나름대로 영리하게 설정된 이 단어는 한편으로 구태의연하다는 뜻을 갖는 ‘상투적 이야기’(commonplace)와 요즘 토니 네그리를 비롯한 철학가들이 제시하는 주제 ‘공동의 복지’(common wealth)의 중간에 위치하는 듯하다.
건축을 음식에 비유해보자. 누군가가 식당을 소개해 달라고 한다면 프랜차이즈보다는 새로운 메뉴가 있거나 3세대를 거쳐서 맛을 유지해온 맛집을 알려줄 것이다. 물론 친한 사람이 아니면 적당히 비싸면서도 불평 없을 장소를 알려주겠지만 말이다.
대형 설계사무실이 한국 건축문화를 대표한다는 것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케이피에프(KPF)나 에스오엠(SOM)과 같이 고층건물을 전문으로 설계하는 사무실이 자기 나라 전시관에 전시하는 경우, 재미는 없겠지만 핏대를 세우면서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형 설계사무실의 경우는 이와 많이 다르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건설업으로 구성된 토건공화국의 삼각편대에서 지금까지 일종의 독점을 통해 건축에서 특혜라면 특혜라고 할 수 있는 지위를 유지해왔으며, 내놓을 특별한 주제가 없이, 단지 그 구성원의 대부분이 건축가협회의 임원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해관계 때문인지 ‘초대’된 명분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반발을 고려해서인지 소위 ‘젊은 건축가’ 몇명도 초대했지만, 그러한 꼼수가 저울의 균형을 맞추거나 구색을 맞추기에는 너무 구차하다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4대강 사업을 전시하면 더 일관적이지 않았을까. 포토샵으로 된 투시도와 실제 공사 전후의 모습을 비교한다면 말이다. 조만간 주최 쪽에서 전시와 관련된 공문을 발표할 것으로 알고 있고, 선정된 업체와 건축가들이 이미 내부 워크숍을 진행한 것으로 안다. 이 시간에도 각 설계사무실에서 많은 직원과 건축가들이 성공적으로 전시를 하기 위해 ‘새로운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을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있지도 않았던 과거를 포장하여 화려하게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기만적인 예비유학생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유는 왜일까?
김일현 경희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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