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논설위원
7월 초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협력사업 취재차 남미의 볼리비아를 다녀왔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있다는 것에 놀랐고, 이런 곳까지 우리나라 원조의 손길이 뻗쳐 있는 것에 감동했다. 볼리비아는 남미대륙 한가운데 있는 나라로 우리나라에서 가기에 가장 먼 나라 중 하나다. 수도 라파스는 평균 해발고도가 3800m로, 걷고 숨쉬기조차 힘들다. 더구나 집권세력인 에보 모랄레스 정권의 성향이 반미좌파여서 우리나라와 전혀 코드가 맞지 않는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원조의 첨병’ 코이카의 직원들이 지프에 고산병 대비용 산소통을 싣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찡했다. 물리적 거리와 이념을 뛰어넘는 원조의 숭고함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의 구체적 경험이 모든 걸 일반화하는 건 아니다. 볼리비아의 현지 활동이 눈물겹다고 우리나라의 일반적 원조 수준이 훌륭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선진 공여국 모임인 개발원조위원회(DAC) 24번째 회원국이 됐다. 원조를 받던 최빈국이 공여국이 된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올해는 미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에 이어 1인당 국민소득(GDP) 2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의 ‘20-50 클럽’ 7번째 국가가 됐다고 정부 안팎에서 자화자찬이 대단하다. 반면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 수준은 아직 양과 질에서 형편없다. 외화내빈이란 말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을 정도다.
우선, 양이 너무 적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2011년도 공적개발원조 규모는 13억2132만달러(추정치)로, 국민총소득(GNI)의 0.12%에 불과하다. 0.07(2007년)→0.09(2008)→0.10(2009)→0.12(2010)로 조금씩 늘어나곤 있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을 넘지 못한다.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평균 비율(0.31%)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고, 유럽연합을 제외한 23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에서 둘째다. 정부는 2015년까지 0.25%로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당국자조차 실행을 담보할 수 없는 선언의 성격이 강하다고 말하는 실정이다. 이래서 궁여지책으로 나온 게 “한 손이 아닌 두 손으로 주는 원조”라는 ‘정신승리법’적 구호다.
질에서도 개선할 점이 많다. 먼저, 유상원조 비율이 개발원조위원회 평균 15.4%(2010년)의 갑절이 훨씬 넘는 38.7%나 된다. 이는 유상원조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와 한국수출입은행이 맡고, 무상원조는 코이카가 담당하는 이중 원조체계와, 이에 따른 원조 주도권 다툼 탓이 크다. 40여개 기관이 우후죽순처럼 나서 원조를 벌이면서 중복·혼선도 심하다. 원조를 하면서 우리 것을 쓰도록 강제하는 구속성 원조의 비율도 개발원조위원회 평균이 12.7%인 데 비해 우린 무려 64.2%나 된다. 진정성 있는 원조가 되려면 무엇보다 유상과 구속성 원조를 확 줄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국격을 높인 대표 사례로 2010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지난해 11월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 올해 3월 핵안보정상회의 개최를 내세운다. 다 좋다. 하지만 겉만 화려하고 실속이 없으면 개인이든 나라든 비아냥을 받기 쉽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이 있듯이 국가엔 국제적 책임이 있다. 공적개발원조의 양과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그런 책임을 다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오태규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
<한겨레 인기기사>
■ 내 나이 41살, 차 타고 ‘담배셔틀’ 해야한다니…
■ 회의중이던 박근혜 올케 득남소식 듣자…
■ 멸종위기 ‘고래상어’ 제주 해역서 포획의 진실은?
■ 안철수 “나는 장거리에서 1등 하는 사람”
■ [화보] 여의도 국회판 ‘악수의 품격’
■ 내 나이 41살, 차 타고 ‘담배셔틀’ 해야한다니…
■ 회의중이던 박근혜 올케 득남소식 듣자…
■ 멸종위기 ‘고래상어’ 제주 해역서 포획의 진실은?
■ 안철수 “나는 장거리에서 1등 하는 사람”
■ [화보] 여의도 국회판 ‘악수의 품격’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