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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비극을 막을 아동보호 체계 / 김희경

등록 2012-07-25 19:26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맨날 이런 식이다. 어떤 아이들은 성폭행이나 죽임을 당해야, 그제야 아이가 얼마나 외롭고 배고팠는지 세상이 주목한다. 그 전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

통영의 초등학생 한아무개양은 늘 배를 곯을 지경으로 방치됐고 혼자 등교하다 살해됐다. 잊을 만하면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통에, 빈곤 가정의 ‘방임 아동’이 성범죄의 주된 표적이라는 것 정도는 다들 안다. 매번 대책은 우범자 철통관리와 돌봄 시스템 확충이었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비통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다 궁금해졌다. 방임과 성폭력, 양 측면에서 현존하는 보호 체계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성폭력 방지 체계의 허술함은 많이 보도되었으니 방임 아동의 보호만 짚어보자. 아동복지법은 양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을 금지하지만, 형법상 범죄가 아니므로 이 법으로 보호받는 방임 아동은 거의 없다. 예전에 비슷한 사건 때도 아이가 혼자 등교하는 것은 방임이라는 여론이 들끓었으나 그때뿐이었다. 한양은 기초생활수급자, 즉 절대빈곤 가정의 아이가 아니라서 정부의 실태 파악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었다. 마을엔 지역아동센터도 없다. 한양이 다닌 읍 단위의 학교는 교육복지지원 대상도 아니다. 취약한 빈곤 가정의 아이를 찾아가서 돌보는 드림스타트 제도가 시행중이지만, 현재 전국 139개 센터 중 읍 단위 센터는 23개에 불과하며 한양이 살던 읍엔 이마저도 없다.

이런 보호 체계론 한양의 비극을 막기 어렵다. 절대빈곤 상태라 복지서비스를 받는 아이는 차라리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나마 있는 안전망에서조차 배제된 빈곤 아동은 한양처럼 숨져야 세상에 알려진다. 상식적 해결책은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먼저 ‘발견’하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빈곤과 가정해체로 방임되는 아이를 찾아내어 총체적으로 보살펴줄 체계가 없다. 영국에선 2000년 부모의 학대로 아이가 숨졌을 때 의회가 수차례 조사를 벌인 끝에 ‘최소 10차례의 위기개입 시점이 있었으나 놓쳤다’고 자성하면서 법과 제도를 바꿨다. 우리는 학대와 성폭력으로 인한 아동 사망이 잇따라도 국회나 정부가 정밀 진상 조사를 한 적이 없다.

또 하나의 비극은 주민들이 한양의 방임 상황을 알고 있는 마을에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지역공동체가 돌봄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1년 전 내가 일하는 단체가 전국 1790명을 상대로 벌인 조사에서 응답자의 72%는 동네에 방임 아동이 있어도 ‘행동하기 꺼려지거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이들이 비정해서가 아니다. 아이는 부모 책임, 더 나아가 부모 소유라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지역공동체의 돌봄 기능 회복은 요원하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유행어는 빈말이 아니다. 아이의 돌봄이 부모의 책임, 하나의 대책만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적절한 보호자가 보살피고, 학교와 지역의 돌봄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짜인 통합 체계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기에 아동복지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전체 인구에서 아동은 20%가 넘는데 아동복지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도 안 된다. 그나마 자치단체마다 들쑥날쑥하다. 아무리 투표권이 없기로서니 이건 너무하지 않나. 적어도 위기에 처한 빈곤 아동을 위한 예산만큼은 중앙정부로 되돌려서, 아이가 어디에 살든 똑같이 보호하겠다고 약속할 대권 후보는 없는가.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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