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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궁중 정치와 웨이보 / 박민희

등록 2012-07-26 19:33수정 2012-07-26 22:28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중국 허베이성의 바닷가 휴양지 베이다이허가 삼엄해졌다.

중국인과 러시아인 관광객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베이다이허 해수욕장 안쪽으로는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별장 지대가 있다. 혁명 이전 이곳은 국민당 고관들과 외국인들의 여름 휴양지였다. 혁명 이후, 1954년 마오쩌둥의 별장이 이곳에 들어섰고, 공산당 지도자들은 여름마다 베이다이허에 모여 피서를 즐기면서 중요한 정치사안을 결정한다. 베이다이허는 공산당 역사에서 많은 주요 사건들의 무대가 되었다. 1971년에는 마오쩌둥의 후계자였던 린뱌오가 쿠데타에 실패한 뒤 이곳 별장을 출발해 비행기를 타고 도망치다가 추락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2003년 후진타오 주석은 베이다이허 회의를 취소하도록 했다. 청렴을 강조하고, 당내 공식적 절차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후진타오식 정치의 중요한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비밀회의는 사라지지 않았고, 베이다이허는 여전히 ‘중국의 여름 수도’로 남았다.

지금 베이다이허는 중국 역사의 숨가쁜 한 장면을 몰래 지켜보고 있다. 중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전·현직 지도자들의 베이다이허 회의가 25일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각 파벌의 치열한 담판과 타협을 거쳐, 차기 10년 동안 중국을 이끌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명단이 최종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집단지도체제를 이루는 9명의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7명으로 줄일지의 문제, 보시라이 사건의 최종 처리 방안도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후 주석이 당·정·군의 권력을 한꺼번에 시진핑 부주석에게 물려줄지,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2년 정도 더 유지하면서 막후 권력을 행사하게 될지도 주요 관심사다. 특히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장쩌민 전 주석, 후 주석, 시 부주석 등 과거·현재·미래 3대 권력이 공존하면서, 더욱 복잡한 권력게임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중국의 운명과 13억5000만 중국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이런 중요한 결정들이 일반인들은 다가갈 수 없는 저 높은 구름 위에서 결정되고 있다. 지도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할 테니 백성들은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는 이런 시스템은 궁중의 권력암투 같은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은 커져간다. 지난 주말 61년 만의 최대 폭우로 큰 피해를 입은 베이징에선 당국이 사망자 수를 속이고 있다는 분노가 확산됐다. 당국은 사망자가 37명이라고 발표했다가 비난 여론이 커지자 결국 나흘 만에 77명으로 고쳐 발표했다. 특히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선 폭우 피해 와중에 최고 지도자들이 베이다이허에 모여 권력 문제만 신경 쓰고 있다는 불만이 들끓는다. “지도자들이 베이다이허 회의를 하느라 베이징의 이런 자잘한 일에 신경이나 쓰겠느냐”, “61년 만에 최대 폭우가 내려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지도자들은 베이다이허에 가느라 말 한마디 없고 시찰도 나오지 않는다”는 글이 너무 많이 올라오자 웨이보에선 베이다이허가 검색 금지어가 됐다.

‘후진타오 10년’ 동안 중국 경제는 4배 이상 커졌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는 중국 서민들은 만나기 어렵다. 사람들은 이제 성장률보다는 빈부격차의 해결, 공평한 기회, 삶의 질, 권리를 원한다. 5억이 넘는 네티즌,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변화의 열망, 여전한 궁중식 정치의 부조화가 중국의 오늘을 흔든다.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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