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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안철수 ‘사람’을 보았다 / 이영자

등록 2012-07-30 19:26

이영자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이영자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2007년 한 토론회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물었다. 공식적인 전과 기록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학생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 것인가? 대답은 간단했다.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낫다.’ 더 이상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 뒤 4년 반 동안 이 사회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기막힌 일들이 숨가쁘게 터졌건만, 좌절과 고통의 비명들이 곳곳에서 들려왔건만, 나는 식물인간처럼 살고 있었다. 촛불광장의 뜨거운 열기를 급냉동시켜버리는 몸으로…. ‘냉소주의’로 비난받아도 상관없었다. 따져 묻지도 않았고, 분노하지도 않았다. 침묵은 길어졌다. ‘정치’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농락하고, 역사를 비웃고, 자폐증 환자들을 양산하는 놀음들에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살아야 했다. 최소한의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해서.

‘안철수’는 생소했다.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미래를 저당 잡힌 젊은이들을 유혹하는 또 하나의 ‘신바람’ 정도로 가볍게 넘기고 싶었다. 어차피 이 땅의 ‘정치’는 그 어떤 것이든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테니까. 역겨운 패거리 싸움들만 난무하게 될 테니까. 더 큰 절망만 주면서도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소모전으로 끝날 테니까. 그래도 한구석 궁금은 했다. 큰마음 먹고 생전 외면해온 예능 프로에 눈을 돌렸다. 설사 웃음과 이미지 선전을 위한 프로였다고 해도, 가식과 진면목을 구별할 수는 있었다. 안철수는 ‘인간성’, ‘진정성’에서 큰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사람’ 그 자체를 믿게 하는 진지함도 느껴졌다. 장인정신으로 엄청난 열정과 공을 들이고, 개인의 이름보다는 미래에 유용하게 쓰일 ‘어떤 흔적’을 남기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왔다고 했다. 그의 행적에서는 삶과 역사를 대하는 보기 드문 신중함과 성실함이 묻어났다. 지금까지 ‘사람’이 문제로 드러나곤 했던 바로 그 지점들에서 안철수는 거꾸로 ‘사람이 희망’임을 보여주었다. 반가웠다.

그런데 그 ‘희망의 사람’이 무참하게 짓밟힐까봐 걱정이 된다. 그러나 한편 그가 정치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보다는 정치권이 사람에 대한 희망을 또다시 저버리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훨씬 더 크다. 정치권이 ‘희망의 사람’을 외면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희망 자체를 버리는 ‘식물정치’를 지속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단칼에 내치는 것은 ‘쇄신’과 ‘수혈’을 공허하게 외치는 정치권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이다. 이는 권력놀음이 아닌 장인정신으로 걸작의 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는 사람들을 영원히 추방시켜버리겠다는 것과도 같다. 이 문제가 더 엄중하다.

그래서 안철수가 고맙다. 사람과 정치를 새로운 희망으로 만드는 역사적 실험에 자신을 바치려는 아주 큰마음을 먹고 있기에 든든하기만 하다. 그가 후보로 나선다면, 그 정치판은 불가피하게 기성정치와는 완전히 다른 문법과 상상력을 담아내야만 할 것이다. 지금까지 희망을 주는 사람들이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면, 바로 그 때문에 안철수가 절대로 필요하다. 진작에 폐기처분되었어야 할 현실정치의 횡포로 새롭게 태어나야만 할 미래정치의 소중한 싹들을 잘라버리게 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약자를 배려하고 사람의 가치를 드높이고 사람과 소통하는 정치를 창조하는 지난한 작업에 감히 도전해보겠다는 그 의지를 꺾지 말자. 그는 지금 국민에게 절박하게 묻고 있다. 진정 정치를 살리고 싶은가를.

이영자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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