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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그럼 ‘5·17’은 뭐라 할 건가 / 정재권

등록 2012-07-31 19:20

정재권 논설위원
정재권 논설위원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 기초한 질문 하나.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 중에서 재임기간의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았던 이는 누구일까? 답이 너무 빤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한강의 기적을 일군 지도자’로 칭하는 박정희 대통령이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말 박정희일까?

경제지표가 망라돼 있는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bok.or.kr)으로 살펴보자.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국가를 주도적으로 이끈 1963~1979년의 연도별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더해 평균하면 9.9%가 나온다. ‘경제대통령’을 장담한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4년 성적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3.1%이니, 9.9%는 확실히 놀라운 수치다. 그렇지만 이게 최고는 아니다. 재임기간의 성장률 평균이 10.0%인 대통령이 있다. 1981~87년의 전두환 대통령이다. 이유가 뭐였든 결과로만 치면 전두환 시대가 박정희 시대보다 한 수 위였거나 최소한 어금지금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성적표를 근거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재국·재용·재만씨 가운데 누군가가 이렇게 주장하면 어찌 될까? 전두환 시대가 1960~70년대의 근대화를 뛰어넘는 경제 선진화를 이뤄냈으니 ‘5·17’은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구국의 혁명”이었다고. 적어도 “아버지로선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국민의 50%가 넘는다”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들이 이런 말을 할 리 없지만, 설령 했다손 쳐도 헛소리로 무시당할 게 뻔하다. 신문의 한 줄짜리 기삿거리도 안 된다. 그런데도 그런 상상이 좀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여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박근혜 의원 때문이다. 박 의원은 5·17을 어떻게 평가할까?

느낌이 좋지 않다. 5·16에 대한 박 의원의 발언과 논리구조로 추론한다면 그가 5·17을 선뜻 쿠데타로 규정할 것이라고 장담하기 힘들다. 5·16과 5·17이 주도세력의 논리와 전개과정 등에서 놀라울 정도로 닮은꼴이어서다. 박정희, 전두환 두 사람 모두 정치·사회적 혼란에서 국가를 구한다는 명분을 앞세웠고, 군부대를 동원해 국가기관의 권한을 정지시킨 뒤 입맛에 맞는 권력기구를 내세웠다. 5·16 뒤 만들어진 국가재건최고회의와 5·17 뒤 설립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그것이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헌법을 고쳐 독재권력을 공고화했다.

박 의원이나 그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왜 그렇게 수십년 전 과거에 집착하냐고, 역사적 평가에 맡길 수는 없느냐고. 박 의원이 재국·재용·재만씨 같은 자연인 처지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자연인이라면 뭐라고 얘기한들 크게 문제될 것도 없다. 하지만 박 의원은 18대 대통령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 있는 공인 중의 공인이다.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헌법 69조)라고 선서한다. 또 헌법 74조1항은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이 되는 순간 박 의원에게 부여되는 핵심 책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가 보위와 군 통수다. 박 의원한테서 5·16과 5·17에 대한 의견을 확인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군인의 권력찬탈 행위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거나, 쿠데타였어도 나중에 발전을 이뤘으면 최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군을 올바르게 통수할 수 없다. 당연히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맡기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5·17에 대한 박 의원의 인식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5·16은 들을 만큼 들었으니 이제 5·17이 궁금하다. 5·17은 도대체 무엇인가?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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