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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생각이 있는 정치 / 오태규

등록 2012-08-09 19:20

오태규 논설위원
오태규 논설위원
런던올림픽에서 올림픽 사상 최초의 4강 진입이란 위업을 달성한 우리나라 남자 축구팀은 영국과 8강전에서 아름다운 경기를 펼쳤다. 상대의 날카로운 공격을 막기 위해 수비 위주의 재미없는 경기를 하지도 않았고, 골을 넣기 위해 무모하게 나대지도 않았다. 우리의 기술과 체력 조건에 맞는 작전과 전술로, 모든 면에서 한 수 위인 축구 종가와 맞짱을 떴다. 최전방과 최후방 사이를 20m 안으로 좁히는 그물망 압박 축구라는 신무기로 몸값이 4배 이상 나가는 프리미어리그의 별들의 현란한 몸짓을 무력화했다. ‘생각이 있는 축구’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 프로축구계에 ‘닥치고 공격’의 준말인 ‘닥공’이란 말이 유행했다. 지금 국가대표 감독을 맡고 있는 최강희 당시 전북 현대 감독이 공격축구로 승승장구하자, 언론이 그의 축구 스타일에 붙인 수사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지 여기서 파생된 ‘닥치고’ 열풍이 전 사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닥치고 정치’ ‘닥치고 한-미 에프티에이(FTA) 반대’ ‘닥치고 취업’ ‘닥치고 주식’ 등 ‘닥치고’를 접두어로 한 용어가 온오프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닥치고 현상의 정점을 찍은 건 ‘닥치고 이명박 반대’를 내세워 광풍을 불러일으킨 ‘나꼼수’였다. 아직도 이런 현상은 진영논리와 짝을 이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최 감독이 한 것은 공격 지향의 축구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이지 무조건 공격 전술을 쓴 것은 아니었다. 홍명보 감독의 올림픽 축구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닥치고 전술은 성공을 거둘 수도 없고 거두기도 어렵다. 문제는 어떤 경향성을 강조하려고 쓴 용어가 진영논리와 결합하면서 사회 전체를 맹목과 광란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괴물로 변했다는 점이다. 진영논리와 만난 닥치고 풍조는 사회 곳곳에서 화합과 통합, 이성과 합리의 공간을 지우고 갈등과 분열, 증오와 분노를 생산한다.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어느 편에 설 것을 강요한다. 따라오면 아군이고 거부하면 적이라고 한다. 대선을 앞두고 더욱 기승을 부리는 편 가르기 정치가 바로 그놈이다.

정치 아마추어 안철수가 뜨는 것은 어쩌면 그가 이 괴물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실상의 출마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는 <안철수의 생각>에서 진영논리의 해악을 자신의 등판 논리로 제시했다. “현재의 정치권은 진영논리에 빠져서 상대의 의견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데,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을 통해서 복지, 정의, 평화의 시대적 과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에 그의 문제의식과 논리가 오롯이 들어 있다. 안철수의 생각은 도올 김용옥의 무기탄 비판론과 맥락이 비슷하다. 김용옥은 <중용 인간의 맛>에서 기탄이란 거리낌이고, 거리낌은 신중함이며, 신중함은 이성의 원형인데, 기탄없는 풍조가 막가파의 행동을 조장하고 있다고 맹렬하게 비판한다. 그러면서 하루속히 무기탄의 죄악과 절망의 시대가 기탄과 신중함과 희망의 시대로 변하길 갈망한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의 수십년 전 절규를 다시 듣는 듯한 느낌이다.

안철수 현상은 ‘가리고-기탄-분별파-탈진영’ 세력이 ‘닥치고-무기탄-막가파-진영’ 세력에게 던지는 일대 도전장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진영논리에 갇혀 있는 구체제 정치에 대한 탈진영 신흥 세력의 반격이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여야의 기득권 세력이 이런 코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한, ‘홍명보의 아이들’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진 영국의 호화군단과 같은 운명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태규 논설위원 트위터·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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