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
이번 대통령 선거판은 경제민주화가 일단 대세를 장악한 모양새다. 여와 야를 가릴 것 없이 입 달린 정치인이면 다들 나서다 보니 떡볶이집도 아닌데 ‘원조’ 시비까지 붙었다. 약삭빠른 증시에선 벌써 관련 테마주까지 생겨났다. 이런 시류를 좇아 언론들은 ‘재계 긴장’ 또는 ‘재계 반발’ 따위 기사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쏟아내고 있다.
일전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을 만난 김에 담백하게 물어봤다. “긴장하고 있습니까?”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그건 언론이 그렇게 쓰는 거고… 일단은 두고 보는 거죠. 대선까지는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경제민주화 또는 경제민주주의는 쉽게 말해 우리 사회의 돈이 더 많이 가진 소수에게 쏠리지 않게, 지금보다는 훨씬 더 골고루 나눠지도록 하자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지 않고선 사회의 통합이 위태로울 지경이니, ‘대선 좌판’에 진열할 신상품에 목말라하던 정치권이 입도선매 경쟁에 나선 곡절도, 누구보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대기업들이 노골적인 대응을 자제할 수밖에 없는 처지도 너끈히 짐작이 간다. 분배의 ㅂ자만 꺼내도 불온사상 소지자로 취급받던 시절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토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치적 유행은 정말 한때의 유행으로 덧없이 끝나는 수가 많다. 특히 부자들의 호주머니를 겨냥했다가 무릎을 꿇은 개혁은 동서양을 통틀어 부지기수다. 그러니 “입법자들의 지혜와 권위가 자기 이익을 지키려고 혈안이 된 자들의 잔꾀와 겨루어 승리한 예는 거의 없다”(<로마제국 쇠망사>)는 기번의 서술은 고전의 한 구절이 아니라 현실의 경구로 새겨야 한다.
우리 현실에서도 ‘실속’은 요란한 ‘구호’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는 경제민주화 논의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법인세는 털끝도 건드리지 않은 세제 개편안을 증세안으로 포장해 내놓았다. 지난 4년 동안 깎아준 부자들의 세금만 80조원이 넘는데, 향후 5년간, 그것도 중산층 과세까지 늘려가며 더 걷겠다는 세금이 달랑 2조원에도 못 미친다. 고소득 자영업자 등 이른바 ‘슈퍼부자’들의 소득세 탈세에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염불’보다 ‘잿밥’에 꽂힌 속내는 언뜻언뜻 내비친 바 있지만, 본색을 드러내는 시기가 너무 이르다. 그나마 좀더 강경해 보이는 민주통합당의 증세안도 실천 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
바로 돈 때문이다. 경제민주화의 요체도 돈이지만, 정치권을 움직이는 것도 돈이다. 더욱이 대선엔 막대한 선거자금이 동원된다. 중앙선관위가 올해 치러질 제18대 대선의 후보자 1인당 선거비용 한도액으로 정한 559억7700만원은, 유권자 한 사람당 10만원씩 거둬도 근 60만명이 나서야 마련할 수 있는 규모다. 물론 이 정도 비용으로 대선을 치를 수 있다고 말하는 정당 인사는 없다.
그 ‘플러스 알파’를 마련하는 손쉬운 방법은, 불법이지만, 대기업들에 손을 벌리는 것이다. 이건 과거에 노무현 전 대통령도 뿌리치지 못했을 만큼 치명적인 유혹이다. 돈을 쥔 쪽은 금전으로 해결하고 싶은 사안이 있고, 갈수록 급전이 필요해지는 건 정치권이니 수요와 공급의 일치는 그야말로 시간문제일 수 있다.
의심의 근거는 더 있다.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도 여야는 지난 18대 국회의 막바지까지 이른바 ‘쪼개기 후원금’과 대기업 등의 입법로비를 맞바꾸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을 끈덕지게 추진했다. 그 ‘총대’는 당시에도 경제민주화에 한창 목울대를 세우고 있던 민주통합당이 멨었다.
예의 그 임원이 보여준 여유는 이런 게 아니었을까. 너희들이 끝까지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대선을 치를 수 있는지 어디 한번 지켜보겠다는.
강희철/오피니언넷부장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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