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언니, 태교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 저는 요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태교 자체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회사 계속 다녀도 괜찮은 건지…. 이래저래 걱정이 많네요. 태교도, 출산도, 육아도.”
임신한 지 5개월 됐다는 아는 동생이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 고민을 털어놓는다. 자식을 한두명 낳는 요즘 시대에는 많은 부모들에게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상전’이다. 워낙 고용이 불안하고 경쟁이 치열한 사회라 그런지, 부모들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우리 아이를 남보다 더 똑똑하고 더 경쟁력 있게 만들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다.
며칠 전 만난 택시기사 아저씨는 “요즘 강남 여자들한테 최고 우상이 누군지 알아요? 바로 안철수예요. 자식이 안철수처럼 되면 좋겠다는 거지. 생전 책도 안 보던 어떤 여자들은 <안철수의 생각>으로 태교를 한다고 난리래요. 안철수 같은 자식 낳고 싶다고”라며 비꼬듯 얘기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해 의사, 정보기술 프로그래머, 경영자까지 하다 수많은 청년들의 멘토에 유력한 대선 후보자로까지 거론되는 안철수 원장이 일부 부모들에게 로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부모들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는 자식이 안철수 원장처럼 뭐든지 척척 해내고 경쟁력이 있어야만 ‘성공한 자식’이라는 인식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 부모들의 ‘문제적 욕망’이 어느 순간 자식의 생기를 뺏고, 꿈을 뺏고, 자식을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의 지나친 노파심일까.
‘안철수 태교’뿐이겠는가. 영어 태교, 바느질 태교, 국외여행 태교, 그림책 태교, 음식 태교, 숲 태교 등등 태교라는 이름을 걸고 온갖 장사꾼들은 부모들이 가진 욕망의 게이지를 더 상승시킨다. 그런 장사꾼들은 꼭 임신부가 그런 물건들을 사고 각종 체험을 해야만 똑똑하고 건강한 아이가 태어날 것처럼 떠들어댄다.
태교는 물론이고 출산과 산후조리, 아이를 키우는 모든 과정에서도 우리는 종종 본질적인 것들에 대한 질문을 잊는다. 연예인이 이용한다는 고가의 산후조리원에 수백만원을 써야 나와 내 아이가 특별한 것 같고, 기저귀·장난감·유모차 등 고가의 외국 브랜드 유아 제품을 써야 아이에게 잘해준다고 착각한다. 거기에 조기 교육과 각종 교구·교재 시장의 상업성까지 결부되면 돈이 있어야만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고 만다.
정말 중요한 태교의 본질은 무엇이고,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태교는 소중한 생명을 잉태한 엄마가 깨끗하고 정갈한 음식을 먹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겁게 생활하며, 잠을 잘 자는 것이다. 임신 기간 동안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와 함께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겪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더 따뜻하게 배려해주는 것 또한 좋은 태교다. 아무리 태교에 좋다는 책을 읽고, 평소 듣지도 않던 클래식 음악을 듣고, 고가의 외국여행을 다녀도, 그 과정에서 엄마가 스트레스를 받고 부부가 옥신각신하면 그 모든 것들은 무용지물이다.
뇌과학자들은 어린 시절에 부모와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아이가 성인이 된 뒤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뇌의 시스템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아이가 떼를 쓸 때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주는 부모, 아이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말로 잘 설명해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분노가 적고 자존감이 높고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좋은 부모란 ‘안철수 태교’로 안철수 같은 자식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잉태 순간을 즐기고 자식이 태어나면 부모 스스로 감정 조절 잘하고 아이와 좋은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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