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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용역경비, 현대판 귀족들의 사병 / 김남근

등록 2012-08-13 19:22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몇 해 전 인기리에 방영된 문화방송(MBC)의 사극 <선덕여왕>에는 나라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귀족들의 사병을 철폐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선덕여왕의 보습이 그려졌다. 법과 공권력이 아니라, 각 귀족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분쟁을 해결하려 한다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난무해 국가 존립기반 자체가 흔들린다는 판단에서였다.

현대 법치주의 국가가 인력을 동원해 사적으로 분쟁 해결을 금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로지 법원의 판결이나 행정처분을 통한 공권력 행사에 의해서만 분쟁을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집단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른바 경비용역업체들이 그들이다.

경비업법에는 시설경비업무를 “도난, 화재, 혼잡을 방지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하여 예방적·방어적 업무에 한정하고 있다. 또 경비업무 과정에서 위력이나 물리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농성중인 노조원 해산이나 세입자 강제퇴거 등의 업무를 이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비업무의 특성상 민원인과의 충돌이 예상되기 때문에 노사분규나 재개발 현장에 배치되는 경비원은 인권·예절 등 28시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사용 장구도 경정·경봉과 소화기로 제한되고, 소화기는 별도 총포·화약·도검류 단속법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허가 없이 소화기를 난사하는 것은 흔한 일이 됐고, 허용된 장구가 아니라 방패, 헬멧, 심지어 쇠파이프, 장봉 등도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법규를 위반해도 처벌 규정은 전혀 없고,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는 점이다. 성공보수금 수억원이 오가는 용역 업무에서 경비업자로서는 감수할 만한 규정이다.

감독관청인 관할 경찰서장의 감독도 허점투성이다. 경비업법 제18조에서 노사분규나 재개발 현장에 경비원이 배치되는 경우 24시간 전에 관할 경찰서장에게 배치신고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관할 경찰서장은 폭력전과자, 미성년자 등 결격자가 있는지를 확인해 결격 경비원을 배제하고 노조원 해산, 세입자 강제퇴거 등 물리력이 수반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같은 법 제24조는 관할 경찰서장이 현장을 수시로 방문해 경비업법 위반 행위가 있으면 바로 경비업체에 직접 “필요한 명령”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경비원들에 의한 폭력사태가 발생하면 항상 관할 경찰서장은 몰랐다고 하고, 허용되지 않은 장구의 회수나 물리력 행사행위 중지 명령, 배치 중지 명령 등이 내려진 예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노사분규나 재개발 현장에는 항시 정보과 형사들이 배치되어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데, 왜 경비원들이 배치되어 폭력이 행사되는 시점에는 늘 현장 주변에 경찰이 없다는 것인지, 혹시 미리 피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렇다 보니 노조원이나 세입자에 대해 폭력이 행사되더라도 시간이 지난 뒤 경비원들과 이에 대항한 노조원·세입자가 쌍방폭행으로 벌금형으로 처벌되고 유야무야 끝나 버리는 일이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

우리가 법치주의를 거부할 수 없는 사회운영의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경비용역들의 폭력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에스제이엠(SJM)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감독행정도 혁신하고 경비업법도 크게 손질하여 우리도 부끄럽지 않은 문명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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