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양학선의 두번째 비행이 끝난 뒤 경쟁자들은 점수도 보지 않고 양의 성취를 축하해줬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챔피언과 경쟁자 모두 존경스러웠다. 양은 도마의 신이란 별호가 주는 중압감을 견뎌냈다. 그리고 인류에게 인간이 새가 되는 새로운 차원의 궤적을 그려 주었다. 사람들은 인체, 아니 인간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전율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이 순간, 선수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선수도 그의 성취가 좀더 많은 사람에게 기쁨이길 바랄 것이다. 스포츠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건 인간이 온전한 주인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굵은 땀방울, 뜨거운 눈물 그리고 햇살보다 눈부신 미소.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인간의 모습, 그 솔직한 서사에 사람들은 깊이 공명한다. 힘껏 도전하고 그 결과를 보듬어 안는다. 그리고 다시 힘을 낸다. 인간이 왜 인간인지에 대한 가장 명쾌한 설명이다.
아이들은 도전과 꿈, 인내, 투지, 배려의 참된 의미를 배운다. 스포츠가 인류에게 베푸는 혜택이다. 기자 가운데 작가적 상상력이나 문장력이 가장 요구되는 이들은 아마 체육기자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스포츠 라이터란 이름으로 부른다. 사람과 사람의 몸 혹은 정신이 부딪쳐 빚어내는 그 빛나는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들이다. 그 아름다운 광경에서 무엇을 건져 올릴 것인가. 답은 어렵지 않다. 바로 사람이어야 한다.
한국의 언론들도 런던올림픽 소식을 전하면서 애국주의나 금지상주의의 틀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금메달이나 종합 순위를 전하는 굵은 활자의 제목은 줄어든 대신, 도전 자체가 아름다운 선수들의 스토리는 더 자주 눈에 띄었다. 손연재 선수의 결선 경기를 전하는 <한국방송>(KBS) 해설자는 손연재 못지않게 경쟁자들에게도 애정을 보여주었다. 국가에 대한 자긍심 못지않게 인간을 존중하는 이런 보도가 심화된다면? 한국에 불리한 판정을 한 외국 심판에게 보내는 이 나라 누리꾼들의 항의메일도 달라지지 않을까. ‘너를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 아니라 정중하면서도 날카로운 반박 논리가 담겨 있을 것이다.
인간사의 감동이 어디 스포츠에만 있겠는가. 오는 12월 중요한 팩트(사실)가 기다리고 있다. 새 대통령이 정해진다. 정치 역시 사람의 행위다.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스포츠만큼은 간명하지 않아서일까. 반드시 감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의 첫 정권교체나 4년 전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을 두고 감동이란 수식어를 유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감동적인 정치드라마의 연출에는 언론의 역할이 크다. 링 안의 선수들이 공정한 게임의 규칙 속에서 경기를 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또 정체불명의 네거티브를 해봐야 손해만 볼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 감동의 요소는 더 불어날 것이다. 언론사마다 선호하는 정치세력이 있을 수는 있다. 그것 자체로 비판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비틀고 사실로 향하는 노력을 소홀히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스포츠에서 감동의 원천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팩트인, 승부의 결과다. 투표를 앞둔 시민들에게도 이런 팩트가 필요하다. 그게 언론이 해야 할 일이다. 언론이 비슷한 사안을 두고 이념이나 지연, 학연과 같은 잣대로 차별과 배제를 행해선 울분과 적의가 쌓일지언정 감동의 주춧돌을 놓기 힘들다. 대선 주자의 선호도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선 안 된다. 사실에 대한 존중은 바로 인간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대선 길, 언론들의 팩트 경쟁이 또다른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강성만 문화·스포츠 에디터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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