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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의자놀이 / 정재권

등록 2012-08-16 19:20

정재권 논설위원
정재권 논설위원
미리 고백해야겠다. 이 글은 명백한 홍보이자 선전이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자그마한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며칠 전 소설가 공지영의 <의자놀이>를 읽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벌어진 노동자 2646명의 정리해고와 그에 맞선 77일간의 장기파업, 경찰의 폭력진압,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해고자와 가족 22명의 자살을 르포 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200쪽 남짓한 책은 쉬이 읽혔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떠오른 복잡한 상념들은 지금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자살한 22명은 한결같이 남은 자들에게 별다른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충격이다. 한 줌의 미련도 없이 삶의 끈을 놓지 않고선 불가능했을 일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절망케 했을까.

그동안 단편적으로 인식해온 쌍용차의 진실이 책을 통해 입체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쌍용차의 기술을 빼먹는 데 급급했던 외국 ‘먹튀 자본’, 경영 위기를 정리해고로 노동자에게 손쉽게 전가한 회사, 기업 구조조정과 외국 매각에 왜곡 소지가 큰 근거를 댄 회계법인, ‘인간사냥’이나 다름없는 폭력을 휘두른 경찰, 그리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구석에 처박은 많은 언론사 등등. 이들이 한패가 돼 해고자들을 죽음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공지영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 “이분(언론)들이 하도 소설을 써 제가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폐부를 찌른다.

화가 났다. 이 죽음의 행렬을 외면한 국가와 사회를 용인하기 어려웠다. 북한 인권운동가가 중국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이유로 중국의 한국인 재소자 625명 모두를 만나겠다고 호들갑을 떤 정부가 정작 우리 땅에서 벌어진 인도 기업의 무책임한 행태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물론 인권운동가 고문을 가볍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쌍용차의 대주주인 마힌드라는 ‘1년 뒤 정리해고자 가운데 무급휴직자 461명을 복직시킨다’는 2009년 당시의 약속엔 관심이 없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 장관은 “개별 사업장의 노사문제”라며 회사 쪽을 편든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선 쌍용차 특별소위의 구성이 새누리당의 외면으로 벽에 막혀 있다. 쌍용차 사정을 잘 모르는 초선 의원이 많다는 게 이유다. 그 뻔뻔함에 기가 차지만, 2~3시간만 짬을 내 <의자놀이>를 읽어달라고 권하고 싶다. 책 내용에 100% 공감하지 않더라도 소위 구성의 필요성은 어렵지 않게 깨달으리라 믿는다. 또 무슨 핑계를 댈지 몰라 여당 환노위원 이름을 명토박는다. 김성태, 김상민, 서용교, 이완영, 이종훈, 주영순, 최봉홍 의원을 기억하자.

그렇지만 한편에서 새록새록 희망의 싹이 움트는 것 또한 느껴진다. 이대로 죽음의 행렬을 방치할 수 없다고 절감하면서도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이들에게 <의자놀이>는 길을 열어준다. 작가는 인세를, 출판사는 수익금을 몽땅 내놓아 1권당 4200원의 후원금이 해고자들에게 전해져서만은 아니다. 쌍용차 사태의 진실을 이해하고, ‘함께 살자’는 연대감과 사랑을 나누는 이들이 여기저기에 있음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둘러보면 해고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밀 방법은 많다. 서울 대한문 앞 천막농성장을 찾으면 좋고, 머쓱하다면 해고자들을 위한 ‘희망식당 하루’(twitter.com/hopeharu)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으면 된다. 18일 저녁 대한문 앞에서 열리는 ‘들국화와 함께하는 공지영의 의자놀이’ 콘서트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그래도 역시 손쉽고 대중적인 방법은 <의자놀이>를 읽는 것 아닐까. 16일까지 1만부 이상 팔렸다는데, 적어도 10만부는 훌쩍 넘겼으면 좋겠다.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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