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백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잠잠해지기는커녕 확산 일로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사과’ 발언에 이어 일본 쪽이 노다 총리의 서신을 스스로 공개하는 무례한 외교 등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 독도 갈등은 최소한 일본의 총선 때까지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다. 이후에도 역사 문제에 관한 한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와 차원이 다른 방향에서 사태가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함으로써 독도 문제가 공공의 영역에서 장기간 논란거리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독도 문제는 철저히 영토갈등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그러나 한국이 놓치지 말아야 할 원칙은 독도 문제는 역사 문제라는 점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동의하는 원칙이지만, 지난 10일 이후 한국 정부의 대응을 보면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때 소설가는 있었어도 역사학자와 국제정치학자는 없었다. 일본 정부의 비판에 대응하는 외교통상부의 답변에서도 일본의 침략과 지배를 강하게 부각시킨 언급은 없었다.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 했을 때 외교통상부가 내놓은 두 줄짜리 논평에도 역사는 없었다. 19일 독도에 세운 표지석에도 ‘독도’와 ‘대한민국’ 글씨를 새겨 넣어 ‘우리 땅’이라는 의미만 부각시켰지 역사와 미래에 관한 메시지는 없었다.
독도 문제는 1905년에도, 오늘날에도 양국 관계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1905년 일본은 러-일 전쟁의 와중에 독도를 빼앗음으로써 한반도 침탈의 제1보를 내디뎠다.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기 때문에 만주를 점령하고 중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었으며, 동남아와 태평양 지역을 침략할 수 있었다. 일본의 독도 침탈은 동아시아와 세계의 평화, 곧 인류의 보편적 가치까지 훼손한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영토 문제 가운데 대외 침략과 관련된 땅은 더 있다. 일본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북방영토(남쿠릴열도)를 둘러싸고 중화권 및 러시아와 갈등하고 있다. 이들 섬 가운데 지배하고 있어 수호해야 할 한 곳과 내 땅이라고 우겨야 할 두 곳, 달리 말하면 일본으로서는 상반된 처지의 영토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세 곳에서 역사를 빼기도 하고 넣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세 곳의 영토에서 과거사를 배제하고 현재를 이해할 수 없음을 일관되게 직시해야 한다. 이렇게 접근하면 독도 문제도 동아시아사적인 맥락과 지역의 현재를 주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 곳을 하나의 패키지로 만들어 일본에 대응하며 지역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접점을 찾는 데도 유리하다.
독도와 관련된 사안을 역사 문제라는 원칙에 입각하여 끈기 있고 엄중하게 부각시키면 다른 역사 문제들과 동시다발적으로 접속할 수 있다. 의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독도 문제를 영토 문제처럼 상대하고 있는 우리의 오류를 방지하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자연스럽게 응하지 않으면서 호소력 있게 국제사회를 설득하는 데도 유리하다.
침략자 일본이 과거사 청산을 거부하는 이상 동아시아 역사 문제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역사 문제로부터 시작해 역사 문제로 회귀하는 독도전략은 과거에 얽매여 미래의 관계를 포기하는 접근법이 아니다. 과거를 공유해 한-일 관계와 지역의 미래 가치를 만드는 기본전제다.
신주백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 고대 성추행 의대생 엄마, 결국 법정구속
■ 장준하 부인 “남편 죽고 24시간 감시당해…얻어먹으며 살아”
■ 비올때 땡기는 막걸리 1병 1만원꼴…제값 할까?
■ 엄마 죽인 아들 처음으로 “어머니가 보고싶어”
■ 싸이, 다저스구장 점령…‘말춤’에 5만 관중 열광
■ ‘장준하 타살 의혹’ 발빠른 누리꾼들 이미 수사중
■ [화보] 기성용 보려고 아침부터 기다렸는데…
■ 고대 성추행 의대생 엄마, 결국 법정구속
■ 장준하 부인 “남편 죽고 24시간 감시당해…얻어먹으며 살아”
■ 비올때 땡기는 막걸리 1병 1만원꼴…제값 할까?
■ 엄마 죽인 아들 처음으로 “어머니가 보고싶어”
■ 싸이, 다저스구장 점령…‘말춤’에 5만 관중 열광
■ ‘장준하 타살 의혹’ 발빠른 누리꾼들 이미 수사중
■ [화보] 기성용 보려고 아침부터 기다렸는데…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