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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궁민시대 국민행복 / 정영무

등록 2012-08-23 19:14

정영무 논설위원
정영무 논설위원
‘취직 전에는 스펙푸어, 가까스로 일하기 시작하면 워킹푸어, 결혼할 때는 허니문푸어, 집이 있으면 하우스푸어, 집이 없으면 렌트푸어, 아이를 가지면 베이비푸어, 교육시킬 때는 에듀푸어, 나이들면 실버푸어….’ <창작과 비평>·연세대 국학연구원 주최 사회인문학 평론상 수상작인 정지은씨의 ‘푸어공화국 대한민국’은 한국인의 인생은 하나의 푸어를 벗어나면 또다른 푸어로 전락하는 푸어의 징검다리에 빠져 있다고 한다.

스펙푸어는 남부럽지 않은 스펙이 있는데도 취업이 어려운 사람, 워킹푸어는 아무리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허니문푸어, 하우스푸어, 렌트푸어가 결혼과 내집 장만, 전세금 때문에 가난해진 부류를 뜻한다면 베이비푸어와 에듀푸어는 출산과 육아, 교육비 지출 때문에 허덕이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노년기에 실버푸어가 있는가 하면 퇴직금을 프랜차이즈 창업에 털어넣는 프랜차이즈푸어까지 생겨났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서 우리 국민 중 자신을 저소득층이라고 답한 비율이 50%에 이르고, 98%가 계층 상승이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답변을 했다는데 그리 놀랍지 않다. 궁민(窮民)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세계화와 기술 변화의 요인도 있지만 나라는 부자인데 개인은 가난한 주된 이유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경제구조 탓이다. 재벌이 경제생태계를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정부는 부의 재분배와 복지에 소극적이었다. 정작 개인의 노력만으로 푸어를 벗어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집단적 자각이 경제민주화를 불러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선후보는 그런 흐름에 발 빠르게 화답했고 놀랍게도 진보진영의 여론조사에서도 경제민주화를 가장 잘할 후보로 등극했다.

하지만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의 실체는 모호하고 한계가 분명하다. 그는 경제민주화와 5년 전 내세웠던 ‘줄푸세’가 배치되지 않으며, “사실 나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줄푸세는 세금과 정부를 줄이고, 기업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는 것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했던 엠비노믹스와 판박이다. 경제민주화의 깃발을 드높이 올렸으나 깃발만 펄럭일 뿐 실체가 없다.

재벌개혁과 증세를 빼고 경제민주화를 말할 수 없다. 재벌에 대해 박 후보는 소유구조 문제엔 손을 대지 않고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성장과 투자가 선순환의 핵심이며 재벌 때리기는 안 된다고 한다. 박 후보는 복지 확대에 관심이 깊지만 증세 없는 세입 확대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복지 수준과 조세 부담에 대한 국민 대타협을 추진하겠다고 여지를 남겼으나, 가까운 장래에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다.

박 후보 주변을 보면 경제민주화를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다. 정책위원회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지낸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과 줄푸세추진위원장을 지낸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가 포진해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우경제연구소 출신이고, 김호연 경선캠프 총괄본부 부본부장과 김세연 경제민주화실천모임 간사는 국회의원 가운데 정몽준 의원 다음으로 둘째, 셋째 부자들이다.

박 후보는 당내 카리스마와 원칙을 중시하는 이미지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쌓았다. 박근혜표 경제민주화는 그러한 박 후보가 국민행복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있을 듯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없어 당혹스런 괴리감을 안겨준다. 재벌의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것은 정운찬 전 총리의 말대로 헤비급과 플라이급 선수를 겨루게 하며 룰을 살피겠다는 것이다. 감세 기조를 유지하면서 이룰 수 있는 복지 확대엔 한계가 있다. 수단과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제민주화와 국민행복은 궁민에게 ‘세이렌의 유혹’과 다를 바 없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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