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은 왜 독도에 갔을까. 자타가 공인하는 ‘친일’ 대통령이 갑자기 반일의 ‘아이콘’으로 돌변한 이유는 뭘까. 그것도 임기를 6개월밖에 남겨 놓지 않은 ‘식물 대통령’이. 한-일 관계를 유례없는 파국으로 몰고간 그의 독도 방문 및 일련의 반일 발언과 관련해, 패를 지어 잘한 일이네 아니네를 따지기에 앞서 이 의문을 먼저 푸는 게 순서일 것이다. 평가도 그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2~3년 전부터 독도 방문을 준비해왔다고 설명했지만, 방문을 최종 결심한 시점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는 지난 7월17일 제헌절 즈음에 신각수 주일 대사를 청와대로 비밀리에 불러 일본 쪽에 일본군 위안부(이하 성노예)와 관련한 모종의 타협책을 제시하고 성사 가능성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타협책의 구체 내용이 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 대사가 일본에 돌아가 일본 고위층에 안을 제시한 뒤 ‘가능성이 없다’는 최종 보고를 하기까진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독도 방문 카드는 7월 말이나 8월 초까지 실행 선상에 없었다고 봐야 한다. 오히려 그때까진 이 정권이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매김했던 한-일 군사협정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성노예 문제 타결에 매진했을 가능성이 크다. 성노예 문제 타결을 꾀하면서 일본의 맹반발을 불러올 게 뻔한 독도 방문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
결국 이 대통령이 8월 초 독도 카드를 갑자기 꺼내든 건 자신이 던진 성노예 타협안을 일본 쪽이 수용할 뜻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였다고 추론할 수 있다. ‘자연보호를 위한 지방순시’라는 청와대 쪽의 설명과 달리, 그는 독도 방문 뒤 국회의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성노예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마음만 먹으면 풀 수 있는데 소극적 태도를 보여 뭔가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독도 방문의 속내를 내비친 바 있다.
그래도 ‘왜’라는 의문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의 교토정상회담에서 삐걱거림이 있었지만 취임 초부터 독도 방문 전까지 한-일 관계는 전반적으로 양호했다. 성노예 문제는 지난해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대통령의 안중에 없었다. 그전까지 어떤 기회에도 그가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한 바도 없었다.
답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 9일 뒤 독도에 세워진 그의 친필 표지석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한-일 군사협정이든, 성노예든, 독도 방문이든 문제를 다루는 그의 태도에서 공통으로 추출할 수 있는 건 “내 임기 안에 이런 큰일을 했다”는 과시욕이다.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자는 욕심이다. 이전 대통령들도 임기 내 역사적 성과 내기에 매달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개인의 치적을 위해 나라의 근간을 흔든다면 너무 참담하다. 더욱이 속은 친일이면서 반일을 가장했다면 용납하기 어려운 위선의 극치다. 선공 뒤 일본의 반격에 꽁무니를 빼는 듯한 이 대통령의 모습에서 그런 냄새를 맡는다면 너무 과민한 것일까.
오는 12월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나 교육·주택·의료 정책도 좋은 선택 기준이 되겠지만, 제발 외교·안보를 잘하는 대통령이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떠올랐으면 한다. 전략도 지혜도 없으면서 전문가의 얘기는 들으려 하지도 않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는 철 지난 성공 경험에 취한 채 부지런만 떨 사람은 꼭 피해야 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대선 전에 이 대통령이 몸소 오시범을 통해 ‘외교 대통령’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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