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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죽기보다 무서운 전기세 / 최기련

등록 2012-08-29 19:13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
이제 유례없던 폭염도 어느덧 사그라지고 가을이 오고 있다. 지난여름 내내 가슴 아팠던 소식을 이제는 ‘무책임하게’ 잊고 싶다. 수많은 저소득 노인들이 ‘죽기보다 무서운 전기세’ 때문에 폭염 속에 고생한 소식을 비겁하지만 잊고 싶다. 그러나 전기요금을 ‘전기세(稅)’라고 오해(?)하고 ‘죽어도 꼭 내려고’ 하는 노인들을 생각하면 우리 전력산업의 비효율성이 너무나 원망스럽다. 물론 이런 비효율과 타협해온 내 처지는 옹색하기 짝이 없다. 이제라도 반성한다. 우선 “전기값이 너무 싸서 전력낭비가 심하고 결국 정전이 우려된다”는 주장의 허구성을 방치한 것을 반성한다.

그동안 한전과 정부는 국민들이 값싼 전기를 낭비해 한전의 경영적자가 8조원 이상 누적되고 결국 정전사태가 온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다. 졸지에 모든 국민이 전기낭비의 주범이 되었다. 방 안이 너무 어두워 종일 전등을 켜는 쪽방촌 어르신도 마찬가지다. 사실 전력은 생존 필수재로서 대체재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격을 올려도 소비가 쉽게 줄지 않는다. 소득증가와 정보화가 진전될수록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가격을 올려 소비를 줄이고 정전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엉겁결에 한전 사장은 최근 경영적자는 연료비 등 공급원가 상승에 의한 것이 아니고 비효율적인 전력거래제도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잘못된 전력사업자 내부거래의 결과로 한전은 적자이고 자회사는 흑자란다. 이에 법정 연결회계방식만 따르면 한전과 그 자회사들을 포함한 전력그룹은 흑자이거나 경영합리화로 해결 가능한 소액적자인 것 같다. 한마디로 안 올려도 될 전기요금을 지난 1년 새 세 차례나 올린 셈이다. 여기다 전력노조는 잘못된 전력거래제도로 민간발전사만 큰 이익을 본다고 특별감사를 청구했다. 민간전력 불로소득이 한전 경영적자 규모(약 2조원)와 대략 비슷하단다. 결국 한전 경영적자는 소비자 탓이 아니라는 것이 검증되었다. 결국 잘못된 전력정책이 주범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더욱 억울한 것은 우리가 낸 돈(연 500억원대 한전 홍보비) 때문에 우리가 분별없는 소비자로 몰린 것이다. 필요 이상 많은 홍보비를 가진 독점기업 한전은 국민을 대상으로 요금인상 홍보에 치중했다. 그러나 어떤 홍보도 진실만은 못하다. 원가에 넣지 말아야 할 법인세, 투자보수비(해외사업 포함) 등을 10%쯤 포함하는 무리한 한전 원가계산법이 밝혀졌다. 이런 원가 부풀리기는 현행 ‘총괄원가보상제도’ 아래서는 과도한 요금인상의 수단이 된다. 인건비·연료비·감가상각비 등 총 공급비용(영업비)과 고정자산·운전자본 등 모든 사업자산에 일정 수익보수율을 곱한 것을 모두 반영해주는 총괄원가제도 아래서는 사업자산이 많을수록 이익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전이 자산 규모를 키우는 원전 등 대형투자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대신 요금인상과 투자배분 왜곡 등 국민 희생으로 귀결된다.

이제 한전 경영적자의 원인이 밝혀진 이상 총괄원가 보상제를 폐지하고 당분간 전기요금 인상은 자제해야 한다. 홍보비는 대폭 축소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기요금을 전기세로 인식하는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보답할 길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요금을 크게 올리지 않고 그 소비를 죄악시하지 않아도 될 효율적인 전력산업체계 구성이 그 답이다. 셰일가스 등 값싼 연료 공급 확대와 기술혁신 가능성을 고려할 때 가능할 것 같다.

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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