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일태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말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집행 이후, 14년8개월 동안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사형 집행을 10년 이상 하지 않은 나라를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그 요건을 충족한 한국은 이미 4년8개월 전부터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으로 등재되어, 인권국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한국의 이런 상황을 부러워한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사형제폐지연구회를 2011년 말에 구성하고, 올 6월 초에 전직 법무성 장관 2명을 포함한 14명의 법조인이 한국을 방문하여 실질적 사형제 폐지국으로 격상된 배경, 사형제폐지운동협의회와 각계의 의견을 청취하였다.
한편 최근 국내에서 반인륜적 흉악범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흉악범들에 대해서는 사형 집행을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한국의 인권국가 지위를 포기할 뿐만 아니라, 사형제 존치에 대한 합리적인 설득력도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현대 국가는 반인륜적 살인범조차도 그자에 대해 동일한 형식의 복수로서의 형벌제도를 두고 있지 않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사회불안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복수는 극복된 구시대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2)국가는 감정적 존재가 아닌, 윤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다. 그러므로 국가가 절도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국가 스스로 절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듯이, 국가가 타인을 살해하지 말라고 요구하면서 타인을 살해하는 사형제는 윤리적으로 모순된다.
(3)모든 인권국가에서는 반인륜적 흉악범에 대해 손발을 자르는 등의 신체 절단의 형벌을 부과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런 형벌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형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손발을 자르는 것이 잔인하여 용납할 수 없는 형벌이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더욱 잔인한 형벌이어서 결코 허용될 수 없어야 하지 않을까.
(4)우리 헌법 제37조 제2항 단서는 (기본적 인권을)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기본적 인권의 본질적 내용은 생명이며,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손발 절단형이 신체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침해라고 하여 용납할 수 없는 형벌이라면, 신체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은 인간의 육체와 그 육체에 대한 생명의 결합으로 생긴 자유다. 즉 신체의 자유 중에서 인간의 생명인 정신을 제거하면 인간의 육체만 남게 되는데, 생명이 없는 육체는 시체에 불과하다. 인간의 시체가 신체의 자유의 본질적 부분일 수 없으며, 생명을 전제로 하고 있는 신체만이 신체의 본질적 자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5)우리나라는 2009년 유럽평의회와 ‘유럽연합(EU)에서 인도된 범인에 대해 사형 집행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범죄인도조약’을 체결하였고, 2011년에는 국회가 이를 비준했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에서 우리나라로 인도된 범인이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라도 사형을 집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에 대해 사형 집행이 가능하다는 것은 ‘법 앞의 평등권’을 천명한 헌법상 평등권에 반한다.
(6)사형제가 품고 있는 위와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고, 사형제와 동일한 정도로 반인륜적 흉악범의 재범 가능성을 영원히 차단할 수 있는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은 사형제의 대안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허일태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겨레 인기기사>
■ [단독] “중국내 삼성 직영공장서도 아동 노동”
■ 검찰 “양경숙이 받은돈 30억 상당수 양씨 계좌로…”
■ “공정위, 법적용 바꿔 4대강 담합 과징금 수천억 깎아줘”
■ 변기 고장에 들뜬 벽지…‘MB표 서민아파트’ 입주 거부운동
■ 박근혜에 “대통령이면 사형 지시하겠나” 물으니…
■ 40년대엔 없었던 하드보드지에 박수근 그림…위작 논란
■ [화보] 고향 갈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 [단독] “중국내 삼성 직영공장서도 아동 노동”
■ 검찰 “양경숙이 받은돈 30억 상당수 양씨 계좌로…”
■ “공정위, 법적용 바꿔 4대강 담합 과징금 수천억 깎아줘”
■ 변기 고장에 들뜬 벽지…‘MB표 서민아파트’ 입주 거부운동
■ 박근혜에 “대통령이면 사형 지시하겠나” 물으니…
■ 40년대엔 없었던 하드보드지에 박수근 그림…위작 논란
■ [화보] 고향 갈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