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5년 전 이맘때도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시드니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가 열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열어 한국전쟁 종식과 6자회담 진전을 위한 부시 대통령의 결단을 받아내기 위해 강퍅한 외교 담판을 벌였다.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막중한 행사 중임에도 ‘불능화’ 단계를 완료하기 위한 ‘10·4 합의’를 만드는 외교를 벌였다.
5년이 흘러 이명박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 아펙 회의에 갔다가 8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한-러 정상회담을 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러 가스관 건설을 포함한 여러 협력사업을 논의하면서 “북핵 해결이 긴요하다”, “북한이 결심할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북한이 핵 포기를 조만간 결정할 것이고, 그래야만 가스관 등의 협력사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달리 말하면 북핵 포기가 없으면 협력사업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이 아직도 ‘비핵·개방·3000’에 매달려 있음을 입증해준다. 그러니 비핵화도 가스관도 될 리가 없다.
실제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지난주 중국 전인대 천즈리 상무부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그 단면을 드러냈다. “남북 교류협력은 해야겠는데 북핵이 난제”라며 “핵이 있는 상태에서는 불안해서 교류협력을 할 수 없다”, “북이 핵을 포기하고 방향을 국민과 경제로 치중하는 변화를 모색한다면 남북관계 발전에 희망이 있다”는 취지의 생각을 밝혔다. 이 생각은 일견 고민을 담고 있는 것 같지만, 이명박 정부의 선비핵화론과 다르지 않아 비핵화 의지를 의심케 한다. 이런 생각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때마침 미국에서도 대선후보 지명 전당대회에 즈음하여 북핵 문제를 포함한 민주당 정강정책이 나왔다.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으면 압박하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고 동맹국들과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해온 오바마 대통령에게 부합하지 않는 정책기조라고 하겠다.
정작 북한은 어떤가? 6자회담과 그 틀 속의 핵심 합의인 ‘9·19 공동성명’ 준수 여부 문제에 대해 심각한 검토작업이 진행중이라는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9·19 공동성명’이 규정하고 있는 행동 대 행동 원칙도 미국에 의한 적대시정책 폐기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방향으로의 움직임이 있다. 더 시간이 흐른다면 ‘9·19 공동성명’이 백지화될 수 있고, 6자회담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결말은 ‘북한의 핵국가화’일 것이다. 막아야 할 길이 아닌가?
막는 길이 만약 존재한다면, 그 방법은 협상이고 가장 유력한 협상 기준은 ‘9·19 공동성명’이다. 즉 6자회담의 재개와 적극적 해결의지를 가진 협상이다. 북핵 문제는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의 안정을 해치는 핵심 안보현안이다. 더 나아가 통일의 상대방인 북한이 장차 어떤 국가가 되느냐는 문제이기도 하다.
차기 정부에서 북핵 문제를 어떤 형태로든 해소하지 못하면 북한은 핵국가로 간다. 현재 미국 행정부와 한국 보수당의 정책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민주진보진영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재확인해야 하며, 그 대선후보는 북핵이 고난도의 과제임을 알고 실행을 위한 포괄적 전략구상을 다듬어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수훈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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