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얼마 전 북한-중국 국경 일대를 둘러보았다. 북한과 중국이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상당부분 회복했다는 것은 새로운 소식도 아니지만 국경에서 본 양국의 활발한 경제협력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무엇보다도 북-중 국경과 휴전선의 엇갈리는 명암이 확연하게 다가왔다.
압록강 하구에서는 만명이 넘는 북한 인력이 신의주 맞은편인 단둥에 상주할 정도로 북-중 교류가 활발했다. 북-중 공동개발 경제특구로 지정된 황금평 인근에서는 양국을 잇는 신압록강대교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두만강 상류에서는 중국 쪽에서 아시아 최대 노천철광산이 있는 북한 무산으로 이어지는 철도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무산의 철광석을 중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함이다. 북-중 공동개발 특구인 나선으로 나가는 관문인 두만강 하류의 취안허에서는 북한을 향한 다리 위로 차량이 빈번히 오갔다. 최근 이곳에서 나선까지 50㎞ 구간의 4차선 도로를 건설한 중국이 이 구간을 직선화하여 29㎞의 고속도로를 새로 건설할 것이라고 한다.
양국의 활발한 경제교류는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유엔은 북한의 2차 핵실험을 응징하기 위해 2009년 6월에 대북 제재 1874호를 결의했지만 북-중 교역은 역설적으로 이듬해부터 급증하였다. 2010~2011년 2년간 양국 교역은 두 배로 증가하여 56억3000만달러에 달했다. 이는 같은 기간 남한과 서방의 대북 제재로 감소한 북한의 교역액보다 7배 이상 큰 규모다.
그러나 북-중 국경에 넘치는 활기와 달리 또다른 경계인 휴전선은 적개심과 정적만이 가득하다. 과거 포용정책이 탈냉전의 추세에 맞춰 남북 화해와 평화번영을 추구하며 휴전선의 냉기를 녹이기 시작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휴전선을 급랭시켰다. 휴전선이라는 척박하고 연약한 지반 위에 움튼 평화와 협력의 여린 새싹이 무참히 짓밟혔다. 지난 5년간 휴전선은 충돌과 대결, 살상으로 얼룩졌다.
이 대조적인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를 위해서는 북-중 국경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고, 동시에 휴전선을 틀어막고 북한과 대결하면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인지 냉철히 따져야 한다. 그리고 두 경계의 짙어지는 명암이 초래할 미래를 가늠해야 한다.
새로운 북-중 관계가 안착할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성패와 관계없이 현 추세는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이 주도한 대북 제재가 북한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북한을 제재하겠다고 나선 이명박 정부의 5·24 조치는 북한의 중국 의존을 심화시키고 애꿎은 남한 교역업체만 도산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자해행위임이 드러났다. 휴전선의 한랭전선과 함께 찾아온 북-중 국경의 훈풍은 한국 경제의 마지막 블루칩인 한반도 경제시대의 개막을 어렵게 하고 남북 공동번영의 길을 막음으로써 통일 전망마저 어둡게 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판을 이 지경으로 만든 현 정부나 여권 세력에 희망을 거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찾는 격이다. 그래서 상황을 바로잡을 합리적이며 강단이 있는 대통령 후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는 남북대화니 신뢰구축이니 하는 알맹이 없이 치장된 언술이 아니라 “어떻게?”라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5·24 조치가 만들어 놓은 자해적 상황과 유엔의 대북 제재가 무력화된 현실을 직시한 위에 우리가 헤쳐나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핵 문제가 안 풀린다고 거기에 머리를 처박고 남북관계를 묶어 놓는 어리석음을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실패한 북핵우선론을 폐기하고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의 선순환 병행발전을 추구하겠다고 밝혀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갈등과 대결로 점철된 휴전선의 시대착오적인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고개를 들어 북-중 국경을 동시에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두 경계의 엇갈리는 명암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생각하며 국가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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