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느그 아부지처럼 살지 말아라.”
고등학교 졸업하고 고향인 울산을 떠나기 전까지 어머니한테서 정말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말이다. 어머니는 밤이면 나를 옆에 앉혀놓고 “못 배우고 가난한 아버지처럼 힘들게 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박노해의 시 ‘넌 나처럼 살지 말아라’에서 “이 악물고 공부해라/ 좋은 사무실 취직해라/ 악착같이 돈 벌어라// 악하지도 못한 당신께서/ 악도 남지 않은 휘청이는 몸으로/ 넌 나처럼 살지 마라 울먹이는 밤”이 바로 우리 집 상황이었다.
내 아버지는 1970~90년대 울산 석유화학공업단지의 한 공장에서 일하셨다. 아버지는 조간(08:00~17:00) 석간(13:00~22:00) 야간(22:00~다음날 08:00) 3교대 근무를 했다. 아버지는 조간을 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밖에서 술을 드셨고, 야간·석간을 할 때는 오전이나 오후에 집에서 주무셨다. 아버지가 깰까 봐 집안에서 떠들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건 엄두도 못 냈다. 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것도 어려웠다. 가족의 짜장면 외식은 텔레비전 드라마에나 등장할 뿐 현실에선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와는 대화는커녕 깨어 있는 얼굴을 보기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아버지처럼 공장이 아니라 사무실, 아침·점심·저녁 출근을 하지 않고 아침에만 출근하는 직장을 갖길 바라셨다.
나는 아버지의 밤샘노동을 요즘 다시 생각한다. 나는 한 달에 3번가량 새벽까지 편집국에서 당직 개념으로 일한다. 30대에는 야근이 좋았다. 야근한 다음날은 점심 먹고 오후에 출근하니, 오전에 보고 싶은 책도 보는 등 여유를 누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당시 야근을 같이 하던 40대 이상 선배들은 무척 힘들어했다. 이런 선배들을 보며 나는 ‘고작 새벽 2시까지 의자에 앉아 있는 게 뭐가 힘드냐’는 생각을 했다. 이제 내가 그 선배들의 나이가 됐다. 40대 이후엔 나이는 산술급수로 느는데, 체력은 기하급수로 떨어진다. 하루가 다르게 야근이 힘들어진다.
요즘은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심야 광역버스에서 팔순을 앞둔 아버지가 생각난다. 나는 한 달에 3~4번 의자에 앉아 새벽 1~2시까지 하는 야근이 힘들다고 이 푸념인데, 의자도 없는 공장에서 밤샘 근무를 수십년 동안 밥 먹듯 해야 했던 아버지는 얼마나 힘드셨을까.
야간노동이 왜 이렇게 힘들까. 자료를 찾아보니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암연구소는 2007년 생체리듬을 교란시키는 야간노동을 발암요인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야간노동은 생체주기를 파괴해 각종 암과 뇌·심혈관계 질환 등의 원인이 되고, 자동차의 배기가스나 다이옥신보다도 한 단계 높은 발암요인이란 게 이 연구소 설명이다. 덴마크에서는 야간 교대근무를 공공보건 문제로 다루기 시작해 1주일에 하루 야간근무를 했던 항공기 승무원의 유방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했다고도 한다.
밤샘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최근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현대자동차 노사의 임금협상 타결이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대차는 45년 만에 밤샘근무를 없앴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밤샘노동은 산업화 시대의 낡은 관행이므로 밤샘노동 폐지는 삶의 질 향상에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아직도 일터 곳곳에서 밤샘근무 노동자들은 “밤엔 잠 좀 자자고.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야”라고 절규한다. ‘남들 잘 때 자고 일할 때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의 요구가 여전히 불온하거나 비현실적으로 취급당하는, 이 사회는 거꾸로 물구나무선 사회다.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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