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무 논설위원
애플이 어제 아이폰5를 공개했다. 법정에 이어 시장에서 다시 글로벌 대회전이 벌어지게 됐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가 오늘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분쟁에 대해 내릴 첫 판결 또한 파급효과가 작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미국 지방법원 배심원들은 삼성전자와 애플의 맞소송에서 삼성이 특허를 침해했다며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미국내 여론은 애플에 우호적이지만은 않다고 한다. 특허를 지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애플의 혁신적 이미지가 훼손된 탓이다.
삼성은 10억5000만달러의 천문학적인 손해배상금을 물고 갤럭시에스2 등 관련 제품의 미국 판매 금지 조처를 받을 위기에 놓여 있다. 평결 내용은 한국에서 바로 전에 있었던 판결이나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송 결과와 큰 차이가 나 혼란스러울 정도다. 보호무역주의에 미국 텃세라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 법원의 배심원 평결은 넓은 의미로 보면 결국 구글이 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를 베꼈다는 것이다. 애플과 삼성의 재판은 애플과 구글의 대리전에 가깝다. 따라서 국가간 보호무역주의 프레임은 곤란하다. 배심원도 소송의 당사자인 두 기업의 합의를 통해 선정한 것이다.
배심원들이 애플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애플이 비교적 명확한 스토리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애플은 배심원들이 직관적으로 알기 쉬운 증거를 제출했다. 삼성이 아이폰과 하나하나 비교하며 따라할 것을 명시한 점이나, 구글조차 삼성에 제품이 아이폰과 비슷하다고 지적하며 변화를 주문한 점 등을 적시했다. 반면 삼성 변호인단은 기술 특허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삼성이 제기한 기술적 내용은 너무 어려워 배심원 평결 제도가 삼성에 불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소프트웨어와 디자인, 트레이드 드레스에 대해 압도적인 평결이 나온 것은 그와 무관하지 않다. 세계적으로 중요시되고 있는 지식재산권 보호의 흐름으로 볼 수 있으나, 특허권의 지나친 보호라는 우려를 낳을 만하다. 이번 소송은 간단한 디자인 특허가 복잡한 기술 특허를 무력화한 새로운 판례라는 평가도 있다.
듀폰과 코오롱의 소송은 영업비밀이 핵심이어서 논란이 더 크다. 특허와 달리 영업비밀 침해는 법률적 해석이 모호하고 검증이 어려워 기술 우위에 있는 회사에 유리하다고 한다. 듀폰은 지난 2009년 코오롱이 영업비밀을 도용했다는 혐의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코오롱이 2006년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퇴직한 듀폰의 엔지니어를 고용했는데, 그가 영업비밀을 유출했다는 것이다. 미국 법원은 지난해 코오롱에 1조원 배상 판결을 내린 데 이어 지난달에는 향후 20년 동안 생산·판매 금지 명령을 내렸다.
코오롱은 아라미드를 생산하는 구미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가 집행정지 긴급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일단 생산 중단 위기에서는 벗어났다. 하지만 다음주로 예상되는 가처분 신청 결과에 따라서는 공장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미국 법원 판결에 회사의 사활이 달렸다.
코오롱은 자체 기술로 아라미드를 개발했으며, 경쟁업체에서 근무한 직원을 컨설턴트로 고용하는 것은 관행으로 듀폰이 영업비밀이라고 지목한 정보들은 모두 공개한 정보라고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과거 5년간 미국에 수출한 액수의 300배가 넘는 9억2025만달러, 곧 듀폰이 그동안 아라미드 연구개발에 쓴 돈을 모두 포함한 금액을 배상하고 공장 문을 닫으라고 한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다.
판결은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한다. 다만 무관한 두 사건이지만 논란의 원인에 배심원 제도가 있는 듯하다. 배심원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배심원에 대한 설득력 차이의 문제다. 팔이 안으로 굽을 수 있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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