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섭 국제부 기자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을 접한 건 지난해 10월6일 출근 버스 안에서였다. 기자의 습성은 천형과도 같아서, 스마트폰 긴급뉴스 알림에 뜬 ‘스티브 잡스 사망’이라는 한줄 뉴스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아침에 죽어서 다행이다’였다. 그 시간이라면 그의 사망과 관련한 각종 기사를 신문제작 마감까지 준비할 짬을 충분히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한겨레>는 스티브 잡스가 한국시간으로 아침에 죽어준 덕분(?)에 1면과 3, 4, 5면에 걸쳐 스티브 잡스 기사로 도배할 수 있었다. 어쨌든 스티브 잡스는 끝까지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11개월 지나, 지난 12일(현지시각) 처음 본 아이폰5의 모습은 적어도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아이폰5의 디자인은 전작인 4s보다 길이만 약간 길어졌다. 두께도 얇아졌고 무게도 가벼워졌다니 실제로 보면 상당한 차이를 느끼게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왕에 5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면 뭔가 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줬어야 했다.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의 가짜 블로그를 만들어 유명해진 전 <포브스> 기자 댄 라이언스가 “하늘 위 어딘가에서 스티브 잡스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린다”고 혀를 찼을까.
이미 인터넷에는 아이폰5와 애플을 조롱하는 패러디물이 쏟아지고 있다. 영화 <스타워즈>의 기사가 길어진 아이폰을 광선검처럼 들고 있는 사진이나 아이폰의 새 케이스라며 긴 칼집을 차고 있는 사진도 나왔다. 모두 아이폰이 길이만 길쭉해진 것을 조소하는 내용이다.
물론 이런 반응은 아이패드 출시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패드는 단순히 아이폰을 크게 늘였을 뿐이라며 놀림거리가 됐지만, 결국 완전히 새로운 영역의 혁명적인 기기라는 것을 증명해냈다. 아이폰5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내가 아이폰5를 왜 그렇게 못마땅해했는지를 확실히 깨달은 것은 <블룸버그>의 스티브 워즈니악 인터뷰를 보고 나서였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창립한, 최고의 엔지니어다. 항상 애플 제품을 칭찬하기 바빴던 그는 아이폰5에 대해서는 “갤럭시S3보다 사진이 잘 찍혔으면 좋겠다”고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애플과 삼성의 특허소송에 대해서 “매우 싫어하며 동의하지 않는다”며 “(소송거리가 된) 작은 것들을 나는 혁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렇다. 이제 애플은 제대로 된 혁신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물론, 도리어 혁신의 방해물이 됐다. 애플이 각종 특허소송을 남발하며 ‘대(大)고소의 시대’를 연 것은 이미 오랜 일이지만, 최근 삼성과의 소송은 애플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세상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게 해줬다. 바로 애플만이 둥근 모서리가 있는 사각형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다. 삼성이 아이폰을 베끼려고 했던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다시 생각해도 소송감은 아니다. 첫 아이폰이 발매되기 전인 2005년부터 팜 운영체제(OS) 기반의 피디에이(PDA)를 써온 나로서는 애플이 왜 저런 디자인이 자기들 고유의 것이라고 우기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모양의 스마트 기기는 그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여러 사람의 혹평에도 아이폰5는 온라인 사전 주문이 1시간 만에 매진되는 등 여전한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은 항상 꼭대기에서 찾아온다. 애플은 최근 초록색 사과 모양의 로고를 쓴다는 이유로 폴란드의 한 온라인 과일·채소 판매 사이트를 고소했다. 이쯤 되면 편집증에 가깝다. 스티브 잡스는 과연 아이헤븐(iHeaven)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형섭 국제부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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