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정치부장
[편집국에서] 단일화라는 이름의 허깨비 / 임석규
정치공학은 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선거, 그중에서도 후보 단일화 문제는 유불리에 대한 공학적 판단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단일화는 상대가 있는 게임과 같은 것이어서 양쪽의 득실 계산이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져야 논의가 진전될 수 있다.
지금은 문재인-안철수 단일화의 공학적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 문재인 쪽은 안철수 캠프가 세력을 정비하고 정책을 완비하기 전에 단일화를 몰아붙이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국면이다. 반면, 이제 막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쪽은 이슈를 제대로 띄워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단일화에 응하라는 건 링에 올라 잽을 날려보기도 전에 판정을 가리자는 얘기라고 여길 것이다. 서로 판단이 판이한 판에 자꾸 단일화를 얘기해봤자 논의는 지지부진, 지리멸렬하기 십상이다.
그래도 단일화 얘기는 사방에서 줄기차게 튀어나올 것이다. 형식적 측면만 보자면 대선 후보 단일화는 도박과도 같다. 걸린 판돈이 크고 모 아니면 도의 단순승부 게임이어서 중독성도 강하다. 자연히 구경꾼들이 몰린다. 단일화를 빼놓고 올해 대선을 논의할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자꾸 같은 얘기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낀다. 담판이니, 경선이니 룰을 둘러싼 밀고 당기기가 이어지면 ‘단일화 피로 증후군’ 같은 말들도 나올 것이다. 이때쯤이면 단일화는 정체불명의 허깨비나 신기루 같은 것으로 인식되고 정책 이슈와 사회적 의제를 가리는 주범으로도 지목될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후보들의 지지율에도 반영될 공산이 크다.
대선은 정치세력들이 미래에 대한 큼직한 설계도를 놓고 토론하는 경연장이 돼야 한다. 야권이 단일화 논의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건 대선의 이런 본래 의미를 퇴색시킬 우려가 있다. 그러니 문재인도, 안철수도 당분간 단일화 얘기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단일화 말고도 대선 후보들이 토론하고 경쟁해야 할 일들은 많다. 문재인과 민주통합당은 집권 경험이 있다. 이는 거꾸로 미래의 변화에 대한 기대치를 약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집권 시절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드러내고 집권 경험을 살려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분명하게 얘기해야 한다. 문재인은 제1야당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다. 하지만 기성 정당과 정치에 실망한 이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민주당을 어떻게 혁신할지 보여줘야 한다.
안철수는 미래에 대한 변화와 비전의 측면에서 기대를 받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니 이젠 정책으로 구체화해 내놓을 때가 됐다. 사람들이 대선 후보 안철수의 생각이 아니라 정책을 보고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철수는 기성 정치와 다른 언어, 새로운 정치 문법을 내세운다. 그렇지만 정당이라는 세력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은 대통령을 미더워하지 못하는 국민이 많다. 무소속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인가? 대선 후보가 된 이상 답을 해야 한다.
단일화를 얘기하지 않는다고 단일화가 무산되는 건 아니다. 야권의 후보 단일화는 결국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굳건한 토대가 있다. 단일화하지 않으면 야권의 승리 가능성이 없다는 게 너무나 분명하다. 양쪽의 정책, 세력 동질성도 크다. 단일화에 대한 요구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 후보들이 단일화를 기피하면 지지층은 지지율 몰아주기를 통해 강제로라도 단일화를 꾀할 것이다. 단일화에 목매고 노심초사할 일이 아니다.
“공학은 중요하지만, 민심이 더 근본이다. 나의 뼈아픈 체험적 결론이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논의에 깊숙이 참여했고 욕도 많이 먹었던 김민석 전 의원이 최근 이런 얘기를 했다. 참고할 만한 대목이다.
임석규 정치부장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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