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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우리’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 미치가미 히사시

등록 2012-09-24 19:25

미치가미 히사시 주한일본대사관 공사
미치가미 히사시 주한일본대사관 공사
8월 이후 한·일 양국 간의 파고 속에 미국 지식인의 비판이 떠올랐다. 1986년, 일본 경제의 최호황기에 “일본이란 울타리 안에서 일본인끼리 얘기해도 파문이 외부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일본의 성공 비결을 연구하던 때로, “예전의 일본은 미국에 더 심한 말을 했다. 다만 일본이 별 볼 일 없을 때라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라고도 했다.

이에 자못 불쾌함을 느낀 나는 국제관계의 현실이란 이런 것인가 생각했었다. 하나 적어도 처음의 지적은 맞다. 국내에서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외국에는 통하지 않거나 오히려 반발을 초래할 수도 있다. 바깥과도 통하는 합리적 설명이 필요하다. 이는 양보가 아니라 진보다. 같은 해 필자가 유학중이던 서울대 강의 시간에 들은 한 노교수의 말씀도 떠오른다. “우리는 일본을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본을 더 잘 아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일본을 잘 모른다는 데서 시작하자”고.

12년 전, 한국 청년한테서 편지를 받은 일이 있다. “한국인은 한-일 관계를 ‘선과 악’의 관계로 본다. 상당히 합리적인 주위 어른도 일본을 상대로는 비합리적이어도 괜찮다고 한다. 독도가 한국 영토임은 수학 공리처럼 자명해 검증이란 발상조차 불순하다고 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오랜만에 다시 온 한국은 국제사회에서의 활약이 눈부신데, 일본에 대한 자세에는 새 발상이 싹튼 것 같기도 하고 큰 진전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중국에 대해서는 외교 의례를 중시하며, 일본한테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인가. 중국이 한국을 우습게 보는 이유다”, “어느 나라나 일본의 저력을 평가하는데 한국만 일본을 과소평가한다”는 지식인도 있다.

섬(독도) 문제를 한국 입장에서 다루면서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이승만 라인 등 간단한 쟁점이 아니다’란 논문을 봤다. 입장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본이 한국에 바라는 것은 객관적으로 파고드는 이런 냉정한 자세다.

한편, 위의 노교수나 청년이 지적한 경향도 여전하다. 일본 정부는 역사를 외면하고, 반성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처도 안 해왔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실 그대로를 봐주기 바란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통절한 반성의 뜻…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 1995년의 이 총리 담화가 일본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위안부였던 분들에게도 역대 총리가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

섬 문제를 두고 한국과 다른 입장을 주장하는 것 자체가 제국주의적 침략성이고 역사 반성의 결여라고 비난하는 것은 양심적인 일본인에게도 메시지가 되지 못할 것이다. 소박한 ‘한류 팬’이나 한국을 매우 중시하는 많은 일본인들이 놀라거나 실망하고 있다.

국가 간의 입장 대립은 있게 마련이라 합리적·건설적·평화적인 논의가 긴요하며, 여기에는 용기와 자기비판력이 필요하다. 사회통념이나 ‘국민정서’에 반하더라도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진정한 애국이며, 이는 상대를 움직이는 힘이 되기도 한다. ‘열린 마음, 사실 그대로’, ‘경의와 예의’는 국제 이해와 우호 교류의 기본이다.

일본도 많은 갈등과 고통을 극복하고 위와 같은 역사인식에 이르렀다. 물론 일본에도 과제는 남아 있다. ‘우리’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선 곳에 더 큰 성장의 길이 있음은 일본도 한국도 마찬가지다. 일·한 양국 모두가 겸허히 사실을 직시하고, 감정적인 언동을 자제하며, 합리적 논의를 대폭 늘려 연대협력을 강화해 나갔으면 한다.

미치가미 히사시 주한일본대사관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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