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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공유’ 실험 / 정재권

등록 2012-09-25 19:22

정재권 논설위원
정재권 논설위원
지난 주말 인터넷 사이트 ‘국민도서관 책꽂이’(www.bookoob.co.kr)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공유도시’ 프로젝트가 호기심을 부추겼다. 온라인에서 ‘공유도시’를 검색하다 눈에 띈 게 ‘국민도서관 책꽂이’다.

아직 정식으로 문을 열지 않고 베타서비스를 시행중인 이 사이트는 회원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책을 맡기고 다른 회원들의 책을 빌려볼 수 있는 도서대여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원들 각자의 책이 모여 도서관을 만드는 형식이다. 그래서 거창하게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도서관’을 표방한다.

흥미로운 건 발상법이다. 지금까지 내 집 책꽂이에 꽂혀 있던 나만의 책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기반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책과 만나 ‘우리의 도서관’을 이룬다. 재화를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함께 소유하며 교환·임대하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 모델이다. 여태껏 낡은 책이나 입지 않는 옷가지를 사회단체에 내놓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 함께 사용하는 방식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당장 집에서 어떤 책을 도서관으로 보내고, 도서관에선 어떤 책을 빌릴지가 고민이다. 그런데 그 고민이 즐겁고 행복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대안경제 모델로 떠오른 공유경제가 우리 삶 가까이에서 실험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이자 사회운동가인 로런스 레식 등이 주창한 공유경제는 ‘재화의 가치는 나 홀로 소유할 때보다 타인과 나눌 때 커진다’는 인식을 토대로 한다. 소유에서 공유로의 전환이다. 지구촌의 경제위기가 소유 지상주의의 한계를 깨닫게 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만든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지난해 ‘세상을 바꾸는 10대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로 공유경제를 꼽았다.

이런 공유경제가 지역 공동체와 결합할 때 한층 위력을 발휘하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지역 공동체는 공유경제 기업들을 후원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공유경제의 주체가 된다. 서울시가 공유도시의 선구자 격인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벤치마킹해 추진하는 공유사업 중에는 솔깃한 것이 많다. 낮 시간에 비는 거주자 우선주차구역 공간을 이웃이 사용하는 ‘스마트 주차장 공유’, 자전거나 우산 등 생활물품을 수리하고 공구·여행가방 등을 빌려주는 ‘동네공방’, 집의 빈방을 함께 쓰는 ‘도시민박’, 자동차가 필요한 사람이 이웃의 차를 빌려 쓰는 ‘카 셰어링’ 등은 일상생활에서 활용하기 쉬운 공유의 방안들이다.

결국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다. 잠시만 서울을 둘러보자. 서울은 전세계에 비길 곳이 없을 정도로 빽빽한 도시다. 1㎢에 1만6189명이 오글거리며 살아간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하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결핍감이다. 절대적으로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너무 없어서, 상대적으로 가진 게 적은 사람은 다른 이보다 부족해서다. 소유의 정점에 이른 1%를 뺀 99%가 절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면 다른 세상이 열릴 수 있다. 나와 네가 가진 것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다면 굳이 더 많은 소유를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서울의 빽빽함은 불편이 아니라 공유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는 장점으로 변한다. 그리고 공유의 과정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망이 형성되고 신뢰가 쌓여 도시화로 사라진 공동체의 정신이 되살아날 수 있다.

서울시가 발 빠르게 공유도시를 선언하고 공유 실험에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 실험이 의미있는 결실을 맺을 것인지는 나와 너, 바로 우리의 참여에 달렸다.

정재권 논설위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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