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혁 경제부 기자
한가위를 전후로 스마트폰 대전이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12일(미국 현지시각) 애플이 ‘아이폰5’를 공개한 데 이어 엘지전자의 ‘옵티머스G’(18일), 팬택의 ‘베가R3’(24일),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2’(26일), 엘지전자의 ‘옵티머스뷰2’(28일) 등이 잇따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곧 치열한 스마트폰 마케팅이 펼쳐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신상’들의 행렬엔 하나의 패턴이 있다. 비싸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2 출고가는 32기가바이트(GB) 모델이 108만원, 64기가바이트 모델은 115만원으로 예정돼 있다. 구본무 회장의 지시로 엘지 계열사들이 총동원돼 만들었다는 ‘회장님폰’ 옵티머스G와 또다른 전략 스마트폰인 옵티머스뷰2가 각각 99만9000원, 96만6900원이다. 유일한 비재벌 제조사인 팬택이 사운을 걸고 만들었다는 베가R3도 옵티머스G와 마찬가지로 100만원에서 딱 1000원 빠진다. 아이폰5는 전작 아이폰4S와 비슷한 94만7000원(32GB)~81만4000원(16GB) 수준이란다.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다른 전자제품에 비해 턱없이 짧은) 2~3년 정도임을 고려하면, 한 가정의 스마트폰 구매·유지비용은 이제 자가용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된 셈이다. 제품 사양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이게 과연 합당한 가격대일까?
시장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발전과 혁신을 가져오고 소비자 편익으로 돌아온다, 자본주의의 핵심이자 장점이라며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들어온 문구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가격을 높게 유지하려는 경쟁이 한창이다. 가설이 아니다. 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는 “휴대전화 가격을 부풀린 뒤 할인해주는 것처럼 소비자를 기만”했다며, 이동통신 3사(에스케이텔레콤·케이티·엘지유플러스)와 휴대전화 제조 3사(삼성전자·엘지전자·팬택)에 과징금 453억원을 물렸다.
백번 양보해 장려금(제조사)이든 보조금(통신사)이든 어차피 소비자에게 다시 되돌려주는 것이라면 이해해줄 여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려금·보조금의 절반 이상은 대리점 또는 판매점의 몫으로 흘러나간다. 방송통신위원회 자료(7월 기준)를 보면, 이동통신 3사의 전국 휴대전화 대리점은 4500곳, 개인 자영업자인 판매점은 3만곳쯤 된다. 그 점포 운영비와 인건비(점장에 직원 2명씩만 계산해도 10만명이 넘는다)의 출처가 바로 장려금과 보조금, 수수료(가입자당 이동전화요금의 5~7%) 등이다. 소비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들의 호주머니를 턴 돈으로 이런 거대하고도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뿐이 아니다. 제조사들은 국내 소비자를 역차별한다. 최신 스마트폰인 삼성전자 갤럭시S3(엘티이 모델)의 국내 출고가격은 99만4000원이지만, 국외에서는 평균 70만원가량에 공급된다. 다른 제품들도 국내 판매 가격이 더 높긴 마찬가지다. 반면 외국 업체들은 자신들의 근거지에서는 싸게, 한국(과 같은 외국)에서는 비싸게 판다. 구글이 미국에서 199달러(약 23만원)에 출시한 태블릿피시 ‘넥서스7’을, 우리나라에서 현재 29만9000원에 예약판매를 접수중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를 넘어 퍼스트 무버(시장 선도자)가 되라.’ 애플 따라하기 전략을 취하다가 미국 특허소송에서 패소한 삼성에 던진 전문가들의 충고다. 그런데 요즘 스마트폰 가격 흐름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 제품들은 적어도 가격 면에서는 ‘패스트 팔로어’ 단계를 지난 듯하다. 하지만 비싼 게 혁신은 아니다.
이순혁 경제부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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