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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검증의 품격 / 오태규

등록 2012-10-09 19:26

오태규 논설위원
오태규 논설위원
검증은 필요하다. 필요악이다. 불가피하다. 공장의 제품도 시장에 나오기 전에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 하물며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를 뽑는 대통령선거다. 상대 진영이나 언론이 가혹한 검증의 칼을 겨누는 건 당연하다. 검증 대상자도 검증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검증을 잘해야 고질병이 되다시피 한 ‘대통령의 실패’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제품의 검증과 대선 후보의 검증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제품 검증은 완벽·무결점이라는 절대성을 지향하지만, 대선 후보는 ‘개중에서 누가 시대정신에 가장 잘 맞고 시대적 과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느냐’는 상대성과 비교우위에 중점이 두어질 수밖에 없다. 대선은 성인군자나 성직자를 뽑는 것과는 다르다.

추석 연휴를 전후해 안철수 후보에 대한 검증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안 후보와 그의 부인이 아파트를 사면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과,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 표절 의혹이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국회의 공직자인사청문회 성과가 쌓이면서 ‘병역기피, 탈세,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표절은 안 된다’는 대략의 공감대가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검증 공세는 일견 정당한 문제제기라고 할 수 있다.

안 후보는 다운계약서에 대해 “어떤 이유에서든 잘못된 일”이라고 사과했다. 시점이 탈세와 관계없고 모두가 다운계약서를 관행으로 하던 때의 일이지만, 서류 작성이 정직하지 않았음을 깨끗이 인정했다. 그러나 <문화방송>의 표절 의혹 보도에는 강하게 반발했다. 객관적 조사 없이 검증이라는 이름 아래 ‘아니면 말고’ 식의 흠집 내기를 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다. <문화방송>의 이틀에 걸친 보도에도 표절당한 당사자로 지목된 교수조차 ‘표절이 아니다’라고 했으니, 안 후보가 완승을 거뒀고 방송은 신뢰를 잃었다.

문제는 앞으로 대선이 다가올수록 이런 무근거·무분별·무책임 검증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대선에선 유력 세 후보가 공통으로 경제민주화와 복지, 사회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차별화를 위해 상대를 깎아내리고 흠집 내는 네거티브 검증 공세에 매달릴 유인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럴수록 검증의 폭주를 경계하고 막는 일은 더욱 절실하다. 자칫 좋은 대통령을 뽑자는 검증이 대통령을 뽑기도 전에 갈등을 조장하고 판을 깨는 주범이 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어느 후보도 개인 비리, 자질과 품성, 정책 및 수행 능력에 대한 검증을 피할 수 없다. 어떤 항목에서도 결정적 하자가 나오면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뒷부분의 검증을 더 중시하는 게 옳다. 대통령은 최고통치자로서 나라 안팎의 다름과 복잡함을 잘 조정해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증진하는 막중한 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검증이 신뢰와 권위를 얻으려면 이중 잣대를 쓰지 않는 게 우선이다. 문재인 후보의 말 바꾸기는 문제 삼으면서 박근혜 후보에 대해선 눈을 감거나, 안 후보는 성인 검증 하듯 훑으면서 다른 후보는 설렁설렁 넘어가선 안 된다. 또 검증하는 쪽은 먼저 의혹에 대한 타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나는 의혹을 제기할 권리만 있고 너는 답변할 의무만 있다’는 고압적 검증은 곤란하다. 검증하는 쪽의 검증할 자격도 중요하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하면 ‘검증을 먼저 검증해야 한다’는 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검증이 타당하고 근거 있으며 균형을 갖췄는지 가려내는 유권자의 ‘검증 독해력’이다. 그래야 품격 있고 질 높은 검증이 자리잡을 수 있다.

오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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