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남들 갈 때 못 간 여름휴가를 지난주에 다녀왔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가족들은 학교와 일터로 갔고 나는 혼자 제주도에 머물렀다. 나흘 동안 한림·애월읍 등 제주 서북쪽 올레를 걷고, 용눈이오름·다랑쉬오름 같은 제주 동쪽 오름 능선을 어슬렁거렸다.
올레와 오름의 멋진 풍광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숙소였다. 내가 묵은 숙소는 하루 2만원짜리 게스트하우스였다. 게스트하우스는 호텔이나 펜션에 견주면 무척 불편하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침실, 화장실, 샤워실 등을 생면부지의 여행자들과 함께 사용한다.
낯선 이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게스트하우스가 별 다섯개짜리 호텔보다 끌린 것은 여행자끼리 수평적 소통이 이뤄지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끼리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선 돈이 많다고,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으스대는 사람이 없었다. 길 위에선 모두가 동등한 나그네이기 때문이다. 내가 머문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밤이면 여행자들이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여기가 정말 좋다’, ‘가보니 그곳은 별로다’, ‘어디 식당이 싸고 맛있더라’ 같은 생생한 여행정보를 주고받았다.
3~4년 전 제주 올레 걷기 열풍이 불면서 올레 코스 시점과 종점을 중심으로 게스트하우스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 2곳의 주인은 모두 2~3년 전 서울에서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른바 ‘제주 이민자’였다.
나는 최근 속도와 경쟁, 소유 중심의 경제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게스트하우스 증가의 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게스트하우스는 공간의 ‘공유’와 정보의 ‘나눔’에 익숙한 사람들이 선택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아직 낯설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소유보다 공유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공감대가 퍼지고 있다. 여기서 나온 개념이 공유경제(sharing economy)와 협력적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이다.
‘공유’란 각자 가진 것을 필요한 사람과 나누고, 공동으로 사용하고 같이 소비하는 것, 비어 있는 공간은 개방해 같이 사용하는 것, 사장되어 있는 자원의 가치와 효율을 높이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지난달 20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보유하고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시간, 정보, 공간 등을 공유해 도시문제를 해결한 공유도시 서울”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공유경제 정착의 열쇠는 신뢰다. 나는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첫날 저녁 샤워하기 전 고민했다. 방을 같이 쓰는 룸메이트는 몇시간 전에 처음 얼굴을 봤고 이름이 뭔지 어디에서 뭐 하며 사는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이 사람을 어떻게 믿고 신용카드까지 든 지갑을 방에 두고 샤워장에 가나’ 하던 고민은 싱겁게 풀렸다. 먼저 샤워장에 들어간 룸메이트가 자기 지갑을 침대 한쪽에 쿨하게 툭 던져 놓고 갔기 때문이다.
나는 게스트하우스에서의 이 경험을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와 상호성이 ‘공유경제’의 밑절미란 점을 확인했다. 한 사회가 신뢰, 소통, 협력할 수 있게 돕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역량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한다. 나는 우리 사회가 엠비(MB)식 물량위주 성장주의를 극복하고 시민이 행복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사회, 투명하고 개방된 사회로 나아가려면 사회적 자본의 축적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박원순 시장의 ‘공유도시 서울’ 선언은 ‘아나바다’(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고) 수준을 넘어, 불신과 경쟁의 사회운영원리를 신뢰와 협력으로 바꾸려는 의미있는 도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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