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한쪽 진영의 핵심으로 일했던 어느 인사가 사석에서 이런 토로를 한 적이 있다. “선거는 다가오는데, (후보의) 지지율은 안 오르고… 당선만 시켜준다면 영혼 아니라 그보다 더한 거라도 팔 것 같은 충동이 들더라.”
요즘 경찰을 향한 문재인의 ‘구애’를 보며 잊고 있던 이 말을 떠올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연거푸 강조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경찰관 옷을 입고 ‘문재인 순경’으로 일시 변신한 심산은 어렵잖게 짐작한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 엄밀히 말해 ‘수사권 경찰 이전안’은 아무리 재고 뜯어봐도, 시쳇말로 납득이 안 된다.
문재인은 경찰에 독자적 수사권을 주려는 이유로 먼저 검찰의 권한 분산을 들었는데, 지금 10인 검찰의 권력이 차고 넘치니 5나 6 정도로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구상에선 검찰에게서 떼어낸 5나 4를 넘겨받아 10이나 15 또는 그 이상의 권한을 갖게 될 ‘공룡 경찰’을 앞으로 누가, 어떻게 제어하겠다는 것인지 방략이 보이지 않는다.
경찰은 이미 전국에 걸쳐 11만명에 이르는 인력에 방대한 정보력, 강력한 물리력, 이 모든 것을 틀어쥔 고도로 집중화된 중앙통제 체계까지 갖춘 막강한 권력기관이다. 과거 독재자들의 전성시대에 경찰은 그들의 충직한 하수인으로 몸집을 불리고 ‘떡고물’을 나눴다. 그 시절에 벌어진 고문과 사찰, 의문사엔 거의 빠짐없이 ‘정치 경찰’의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과거사로 끝난 것도 아니다. 경찰은 얼마 전에도 안철수의 뒤를 캤다는 의혹으로 곤욕을 치렀다. 진압작전에 쫓기는 쌍용차 노조원들을 토끼몰이에 곤봉으로 짓이긴 것도, 용산참사를 부른 것도, 부산행 희망버스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시민들에게 기어이 소환장을 날린 것도, ‘컨택터스’라는 이름의 사설 용역업체가 노조원들에게 잔혹한 폭력을 휘두를 때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었던 것도 경찰이다.
특히 문재인이 경찰에 제일 먼저 부여하겠다는 민생 범죄 수사권은 자칫 ‘투캅스’를 양산하는 면허증이 될지도 모른다. 늘 자신들을 꼬나보는 검찰이 있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룸살롱 황제’ 이경백한테서 검은돈을 받아 수십명이 구속되고(경찰은 자체 수사에서 단 한 건의 커넥션도 밝혀내지 못했다), 국내 최대 룸살롱이라는 ‘어제오늘내일’에서 금품을 챙긴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 ‘민생’ 경찰의 현주소다.
지난해에만 각종 비리로 징계를 받은 경찰관이 물경 1200명을 넘고, 사건 축소·무마 청탁, 단속 정보·편의 제공, 음주운전 및 교통사고 축소·무마의 대가로 돈을 받았다가 면직된 경찰관이 500명에 육박한다고 국회에 보고됐다. 이런 마당에 독립적인 수사권까지 쥐여주면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문재인은 수사권 조정이 “경찰관들의 사기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지만, 그 뜻을 헤아리기도 난감하다. 자기 집 안방에서 주부가 대낮에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어도, 새벽 귀갓길 여성이 납치·피살돼 그 주검이 심각하게 훼손되어도 경찰은 예방은커녕 범인 검거마저 제때 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비난 여론이 들끓었는데, 경찰에 독립적인 수사권이 없어서 치안에 구멍이 뚫린 것도 아니다. 그러니 경찰의 사기와 수사권을 결부시킨 그의 설명이 의아할 따름이다.
“검찰이 명실상부하게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하려면 집권자와 검찰 총수의 양심과 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민변 원로인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최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검찰 개혁이 더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돼 있지만, 경찰에 수사권을 주는 문제와는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독립적인 수사권을 행사하기엔 경찰의 갈 길이 멀다.
강희철 오피니언넷부장 hckang@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단독 포착] MB큰형 이상은 귀국 “6억 전달, 들은 바 없다”
■ “아버지 지시”…MB 일가 노림수는?
■ 아이폰5 국내 출시 또 연기…애타는 소비자
■ 530살 접목 감나무, 해마다 감 5천개 ‘노익장’
■ 김성태 의원, 국감내내 ‘지역구 민원 압력’ 빈축
■ 애플, DOA라더니 7인치 아이패드 미니
■ [화보]응답하라 MBC
■ [단독 포착] MB큰형 이상은 귀국 “6억 전달, 들은 바 없다”
■ “아버지 지시”…MB 일가 노림수는?
■ 아이폰5 국내 출시 또 연기…애타는 소비자
■ 530살 접목 감나무, 해마다 감 5천개 ‘노익장’
■ 김성태 의원, 국감내내 ‘지역구 민원 압력’ 빈축
■ 애플, DOA라더니 7인치 아이패드 미니
■ [화보]응답하라 MBC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