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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고목나무에 꽃 필까 / 정영무

등록 2012-10-25 19:09

정영무 논설위원
정영무 논설위원
열흘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은 당선자를 예측하기 힘든 혼전 양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세금과 큰정부·작은정부라는 선택지는 분명하다. 양당제 전통에다가 현직 대통령과 야당 후보가 경쟁하기 때문에 공약이 차이 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우리 대선 후보들은 경제민주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놓고 있다. 안정이냐 변화냐, 성장이냐 분배냐를 두고 대립각을 세웠던 역대 선거와도 대비된다. 세계적 흐름인 정책 동조화를 넘어 정책 차별성이 실종됐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후보들 모두 재벌규제와 복지확대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별성이 없다는 얘기는 잘 모르거나 의도적인 왜곡에 가깝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경제민주화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경제민주화와 지향성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재벌정책은 칡뿌리처럼 이해관계가 얽힌 일이라 입안 과정에서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해 실현가능성 변수를 곱하면 편차는 더욱 뚜렷해진다. 색깔이 확연히 다른데 초록이 동색이라는 착시효과는 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만들어내고 있다. 김종인 거품을 걷어내고 봐야 한다.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18개 추진단 중에 경제민주화추진단과 두 축을 이루는 힘찬경제추진단이 있다. 여기선 경제민주화만으론 일자리 창출이 어렵고 정체성이 흔들린다며 경기부양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 전국경제인연합회 쪽은 지금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다음 정부는 기업의 기를 살리고 성장률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경련은 법인세율을 낮춰 성장률을 끌어올린 다음에 그 과실로 복지를 하는 게 순서라는 성장우선론을 되풀이했다. 전경련과 힘찬경제추진단의 은밀한 공명, 아니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이끌림의 자장이 느껴진다.

박근혜 후보가 이제껏 내놓은 재벌정책은 신규 순환출자 금지 외에 비리 총수에 대한 처벌 강화, 불공정거래 및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이다. 당연한 일로 경제민주화라기보다는 현상유지 선에서 공정성을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소유구조와 동시에 행위 규제를 하겠다는 문재인·안철수 후보 쪽과는 근본적으로 온도 차이가 난다.

박 후보는 더욱이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겠다고 하면서도, 친성장 정책인 줄푸세와 경제민주화가 큰 틀에서 같다는 형용모순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박 후보를 에워싸고 있는 핵심 두뇌들의 면면은 거의 친재벌이고 줄푸세 신봉자들로, 15명으로 좁힐 때 그 비율은 90%에 이른다고 한다. 참모들이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을 공유해도 모자랄 판에 보수 본류 일색으로 무슨 경제민주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고개를 흔들지 않을 수 없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이 재벌 총수의 방패막이 노릇을 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다. 경제민주화의 시금석이 될 만한 사안인데도 새누리당 의원들은 재벌 총수는 가능하면 안 부른다는 요상한 원칙을 내세웠다. 새누리당의 현재이며 미래다.

33년 전 일어난 10·26 사태는 박근혜 후보에게 가장 아픈 일이다. 그러한 비운에서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게 김종인 위원장의 거침없는 소신이다. 하지만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와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는 뿌리도 줄기도 너무 다르다. 김 위원장은 지금의 박 후보는 줄푸세를 공약할 때의 박근혜가 아니라고 하는데, 박 후보는 정작 딴소리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추진단에서조차 김 위원장은 섬이다. 밥 먹듯이 경제민주화를 말하지만 세부 정책에서 내놓은 것이 없는 이유다. 고목나무에 꽃을 피우겠다는 김 위원장의 노투가 연목구어보다는 낫다는 데서 위안을 가져본다.

정영무 논설위원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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