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논설위원
영토문제처럼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소재도 없다. 어느 나라건 영토문제만 불거지면 ‘한 치도, 1㎜도 물러설 수 없다’고 아우성친다. 이런 현상은 영토와 국민, 주권을 3요소로 하는 근대국가가 존속하는 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영토문제엔 언제나 상대가 있다.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서로 비키라고 으르렁대지만 물러설 수 없는 외길이다. 충돌하거나 다른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충돌은 곧 전쟁을 뜻한다. 1969년 사회주의 형제국인 소련과 중국 사이의 우수리강 전바오섬(러시아 이름 다만스키섬)을 둘러싼 무력충돌과, 82년 영국과 아르헨티나 사이의 포클랜드 전쟁이 대표 사례다.
다른 길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국제사법재판소(ICJ)와 외교교섭이 있는데, 서로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통해 해결한 사례가 거의 없다. 그나마 이제까지 나온 해결책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게 이른바 ‘덩샤오핑 해법’이다. 덩은 1978년 일본과 국교정상화 협상 당시 센카쿠열도(중국 이름 댜오위다오) 문제와 관련해 ‘지금의 지혜로는 해결할 수 없으니 후대가 더 좋은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미루자’는 미해결 보류 방식을 제안했다. 중국이 요즘 센카쿠 문제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건 일본이 이런 ‘미해결 보류’의 암묵을 깼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일 간의 독도, 남북 간의 북방한계선(NLL) 문제는 우리가 안고 있는 2대 영토문제다. 독도에 대해선 일본은 영토문제, 우리는 역사문제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하지만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1965년 한-일 협정에서 미해결 보류로 남겨둔 영토문제다.
엔엘엘도 마찬가지다. 휴전협정 이후 유엔사가 해상 충돌을 막기 위해 임의로 그은 선이지 법적 경계선이 아니다. 1992년 노태우 정권 때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남북이 협의 대상임을 확인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독도건 엔엘엘이건 모두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도는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고, 엔엘엘도 우리가 실질관리하고 있다. 쉽게 말해, 다른 해결 방안이 마련될 때까지는 ‘우리 것’이다. 굳이 우리가 먼저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는 이유다. 일본이 실효지배 중인 센카쿠를 괜히 국유화했다가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는 것에서 배워야 한다.
새누리당이 연일 엔엘엘을 ‘대선 병기’로 활용하고 있다. 그것도 이미 숨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확인할 수 없는’ 발언을 끌어들이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영토는 절대 양보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국민감정이니만큼, 사실 여부를 떠나 선거전략상으론 ‘남는 장사’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국익엔 분명히 마이너스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50년 만에 일본으로 하여금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카드를 뽑게 했듯이, 엔엘엘 공세는 북이 대선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할 뿐이다.
영토문제는 풀어놓으면 걷잡을 수 없이 날뛰는 마물이다. 유리한 위치일수록 더 좋은 방안이 나올 때까지 잘 관리하는 게 최선이다. 영토문제의 이런 속성을 모르고 선거에 이용한다면 무지한 것이고, 알고도 하는 것이라면 사악하다. 최근 <일본의 영토분쟁>이란 책을 펴낸 마고사키 우케루는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국경분쟁을 유발하여 국내 기반을 강화하려는 인물이 있었다”고 설파했다. 이런 무책임한 인물을 분리수거하는 게 선거의 기능이다.
오태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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