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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염무웅 칼럼] 잘 나누어진 권력

등록 2012-11-11 19:32

염무웅 문학평론가
염무웅 문학평론가
문재인과 안철수 사이에 단일화 정치협상이 진행되고 있고, 많은 국민의 이목이 여기 쏠리고 있다. 단일화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질수록 새누리당이 신경질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지 모른다. 상스러운 말로 스스로 자기 인격을 훼손한 사람은 치지도외하는 게 낫겠지만, 박근혜 후보 자신도 지난 9일 부산에 내려가 ‘권력 나눠먹기’, ‘단일화 이벤트’라며 공격적 언사를 구사한 바 있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단일화에 성공할지 못할지 아직은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1987년 12월의 강력한 선행학습에도 불구하고 협상이 실패한다면 두 사람은 더 이상 이 나라에서 낯을 들고 살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런 뜻에서 협상의 결론은 이미 나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문제는 결론에 이르는 과정의 진정과 성심성의가 얼마나 국민들의 마음을 흔드는가, 그리고 결론에 담긴 구체적 내용들이 어떻게 한반도 역사의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것인가이다.

대통령 선출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지난 60여년의 한국 정치사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번째는 이승만-박정희의 독재권력 아래 여당은 정치적 들러리 노릇을 하고 야당은 분열되어 있던 시기이다. 따라서 그 시절 야권은 언제나 후보 단일화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가장 저명한 사례는 1955년 통합야당인 민주당의 출범일 것이다. 이듬해 제3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 승리를 눈앞에 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신익희 후보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정권교체는 물거품이 되었고, 뒤이어 조병옥(1960)-윤보선(1963, 67)-김대중(1971) 등이 야당 단일후보로 나섰으나 이승만-박정희의 벽을 넘지 못했다.

두번째는 1972년부터 1987년까지, 즉 국민들의 선거권이 사실상 박탈되었던 기간이다. 민주주의의 암흑기이자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가열찬 투쟁의 시기였다. 세번째는 그 후부터 오늘까지의 시기인데, 이 기간의 변함없는 특징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통합세력의 단일후보가 늘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것이다. 소위 ‘3당 야합’에 기반한 김영삼, 디제이피(DJP) 연합으로 무장한 김대중은 물론이고 노무현과 이명박도 각각 나름대로 자기 진영에서의 단일화가 승인이었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살펴본다면 박근혜가 문재인-안철수의 단일화 협상을 비난하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 선출의 역사 전체를 비난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자신 지난 5년 동안 이 나라의 국정을 이끌었던 정당의 단일후보라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비록 당명이 바뀌기는 했지만, 한나라당의 공과를 책임질 정당이 새누리당 말고 어디 따로 있을 수는 없다. 물론 박근혜는 단일화 자체를 공격한 것이 아니라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의 촉박한 단일화를 문제 삼았다. 후보 검증의 시간을 못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도 안철수도 그동안 국민들 앞에 충분히 노출되어 왔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단일화 협상의 시점이 늦어진 데 대해서는 그들의 지지자라면 불평할 권리를 가질 수 있어도, 그들과 경쟁하는 후보로서는 관여할 바가 아닐 것이다.

더구나 ‘권력 나눠먹기’라는 공격은 적어도 박근혜의 입에서는 나와서 안 될 말이다. 왜냐하면 과거 유신체제가 총칼로 ‘권력 혼자 먹기’를 추구한 시대임을 우리는 너무도 똑똑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시대의 강압적 권력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갔으며, 그러느라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꽃 같은 인생을 참혹하게 망쳤던가. 그러므로 민주주의란 어느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권력이 적절하게 배분되도록 제도화하는 기술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안철수 정치협상의 성사 자체가 민주주의의 내용적 성숙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후보들 자신과 그들을 돕는 일꾼들 모두에게 그야말로 멸사봉공의 정신이 있어야 정치쇄신은 진정한 실체를 획득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단일화 이벤트’란 말은 발설자의 의도와 다른 차원에서 명심해야 할 교훈을 담고 있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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