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보름 전 미국 대선은 한마디로 ‘인종투표’였다고 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 표에서 크게 뒤졌으나 소수인종 표에서 더 크게 이겨 재선에 성공했다.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투표자 가운데 흑인·중남미계·아시아계 등 소수인종은 28%, 백인 남성은 34%, 백인 여성은 38% 정도를 차지한다. 오바마는 소수인종 표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보다 무려 17%포인트가량 앞섰다.(22% 대 6%) 그는 백인 남성과 여성 표에서 각각 12%·2%포인트 정도 뒤졌지만, 전체로는 2.6%포인트 차이의 완승이었다. 가구소득과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오바마 지지가 많았던 것도 인종투표라는 성격과 대체로 일치한다. 그가 전체 여성 표에서 롬니보다 많이 앞선 점을 들어 ‘성별 투표’를 강조하는 시각도 있지만, 오바마는 지난 선거 때 백인 여성 표에서 공화당 후보를 이긴 것과 달리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인종투표는 계층 갈등이 인종 문제로 치환되는 미국 사회의 구조, 소수인종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는 추세 등 피해갈 수 없는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바마는 여기에 적극 대응하려 한 반면 롬니와 공화당은 늘 하던 대로 백인 남성 표에 치중했다. 주류 정치에서 소외된 ‘정치적 소수파’가 오바마 쪽에 응답하면서 초박빙으로 보이던 선거전은 승패가 갈라졌다.
우리나라도 양상에서 비슷한 점이 있다. 겉으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잠재적 야권 단일후보의 팽팽한 접전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주체로 대접받지 못한 많은 정치적 유동인구가 있다. 예를 들어, 경제활동인구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비정규직 종사자, 늘어나는 빈곤층(특히 지방의), 이중으로 고통을 겪는 여성 고령자 등이 그렇다. 최근에는 양극화 심화와 함께 청장년층 남성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소수파로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들의 생각이 고정돼 있지 않음은, 정권교체를 바라는 응답자가 국민의 60% 선에 이르는 것에서 일부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적어도 4분의 1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정권교체로 보는 게 아니라 확실하게 지지할 만한 후보가 없다는 뜻이다. 후보들이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면, 이들이 얼마나 투표장에 나가 누구에게 투표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지금과 같은 전환기적 위기 때에는 기존의 소통 양식에 머물러서는 해법이 나오기 어렵다.
오바마가 1930년대 대공황기에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에 대해 얘기하며 인용한 에피소드가 있다. 민권운동가인 필립 랜돌프가 루스벨트를 만나 흑인과 노동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대책을 촉구했다. 진지하게 들은 루스벨트는 대답했다. “당신이 말한 모든 것에 동의합니다. 이제,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루스벨트처럼 하겠다는 오바마의 태도에 소수인종은 공감했다.
앞서 이 칼럼에서, 대통령 후보에게 요구되는 소통의 네 측면으로 ‘쉽고 명쾌한 정책대안’ ‘유권자들과 공감 강화’ ‘다른 후보와 대비되는 차별성’과 함께 ‘평상시 공적 담론에서 배제됐던 사람들과의 대화 확대’를 제시한 바 있다. 후보들은 이제까지 제대로 얘기해보지 않은 사람들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더 많은 소수파, 더 다양한 사회적 약자와 소통해 투표장에 가도록 하는 후보가 결국 승리할 것이다. 이들이 선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역사의 순리이기도 하다.
김지석 콘텐츠평가실장 jkim@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수뢰혐의 김광준 검사 구속…검찰총장 “참담”
■ 4대강 보 ‘바닥 보호막’ 균열 잇따라…“세굴 지속땐 붕괴”
■ 처참한 가자지구, 어린이 희생 속출
■ ‘장손’ 이재현 CJ회장, 할아버지 묘소 참배 포기
■ 의협 “의료수가 올리라…주5일만 진료”
■ “누구보다 박근혜 후보에게 ‘유신의 추억’ 보여주고 싶다”
■ [화보] 삼성가 장손 ‘뒷문 참배’ 못해?…추모식 불참
■ 수뢰혐의 김광준 검사 구속…검찰총장 “참담”
■ 4대강 보 ‘바닥 보호막’ 균열 잇따라…“세굴 지속땐 붕괴”
■ 처참한 가자지구, 어린이 희생 속출
■ ‘장손’ 이재현 CJ회장, 할아버지 묘소 참배 포기
■ 의협 “의료수가 올리라…주5일만 진료”
■ “누구보다 박근혜 후보에게 ‘유신의 추억’ 보여주고 싶다”
■ [화보] 삼성가 장손 ‘뒷문 참배’ 못해?…추모식 불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