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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양육수당의 함정 / 양선아

등록 2012-11-25 19:18

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내년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무상보육과 양육수당 관련 예산을 1조원 이상 늘렸다. 이게 원안대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정부는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에 다니는 만 0~5살 모든 아이들에게 일정 비용을 지원하고,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만 0~5살 아이들에게 20만원씩 양육수당을 주게 된다. 언뜻 보면 국가가 무상보육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안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부모들은 양육수당의 함정에 주목해야 한다. 양육수당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금전적 보상을 해주겠다는 얘기다. 양육수당을 선택한 사람은 보육시설에 보낼 수 없고, 보육시설을 선택한 사람은 양육수당을 받을 수 없다. 결국 국가는 양육수당을 통해 아이를 돌보고 교육하는 책임을 가정에 전가하는 ‘꼼수’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애초 무상보육이 나오게 된 배경과 무상보육의 취지를 생각해 보자. 2011년 기준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24명으로 여성들의 ‘출산 파업’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1.3%로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74.1%)에 견주어 매우 낮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의욕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많은 여성들이 출산과 동시에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끊임없이 일과 양육 사이에서 갈등한다.

직장맘이 아니라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막대한 양육 비용에 대한 부담을 안은 채 살고 있다. 육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무상보육은 장차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들을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고 키우겠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여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정책적 목표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목표를 ‘무상보육 또는 양육수당’이라는 조합이 잘 구현해내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무상보육은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보편적 복지정책이어야 한다. 그런데 양육수당을 선택하면 보육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되니 보편적 복지 정신에 어긋난다. 예를 들어 단돈 5만원이 아쉬운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할머니 등 아이를 맡길 사람이 있다면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고 양육수당을 선택할 수 있다. 또 매우 낮은 급여를 받는 저소득층 여성에게 아이가 여럿 있다면, 일을 포기하고 양육수당을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렇게 되면 저소득층 아이들은 누구나 받아야 할 돌봄과 교육에 대한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정식으로 국가가 제공하는 교육을 받게 된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만 3~5살 누리과정으로 보편적 유아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정부가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 양육을 유도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은 모순적이지 않은가.

‘무상보육 또는 양육수당’이라는 조합에서 ‘아동수당과 무상보육’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할 경우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과 어린이집 관리·감독 강화 등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다. 그만큼 무상보육을 실현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문제다.

그렇다고 해서 무상보육 정책을 무작정 땜질식으로 고치려 해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비전과 함께 종합적으로 다양한 문제들을 따져 정책을 수립하고 국민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여론에 떠밀려서, 또는 각종 부작용을 눈가림하기 위해 현금성 지원을 늘렸다간 정책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들에게 혼란과 분열만 부추길 수 있다.

양선아 스페셜콘텐츠팀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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