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박원순 시장 어때. 잘하고 있어?”
서울시 출입기자인 내가 지난 1년여 동안 많이 받은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글쎄요. 좀더 지켜봐야죠”라고 대답했다. 박 시장이 취임한 뒤 1년 조금 지나 평가할 구체적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년을 꼽아보니 나는 박 시장과 꽤 여러번 밥을 먹었고, 1시간이 넘는 인터뷰도 몇차례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박 시장을 제대로 알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지난달 중순 7박9일간 박 시장의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출장에 동행 취재를 했다. 박 시장을 가까이서 지켜볼 좋은 기회였다.
취재를 다녀와서 내가 내린 결론은 ‘박원순은 착한 불도저’였다. ‘착한 불도저’는 유럽 출장에 동행한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이 붙인 별명이다.
겸손한 일상 언행과 일에 미친 듯한 열정. 박 시장은 언뜻 모순될 것 같은 두 가지 모습을 동시에 보여줬다.
출장 기간 내내 박 시장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지난달 14일 오전 이탈리아 볼로냐에선 갑자기 도심 시위가 벌어져 길이 꽉 막혔다. 박 시장을 수행한 서울시 공무원들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목적지에 제시간에 가려면 차량에서 내려 낯선 이탈리아 시위대 한복판을 시장더러 걸어가라고 해야 할 판이었다. 권위적인 시장이라면 “무슨 일을 이따위로 준비성 없이 하느냐”는 호통이 떨어질 판이었다. 하지만 박 시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시위 인파를 헤치고 목적지를 향해 15분가량 걸었다.
프랑스 파리 교민 사회에선 박 시장의 소탈하고 실용적인 모습이 화제가 됐다고 한다. 현지에서 여행사를 꾸리는 교민은 이런 글을 온라인에 올렸다. “파리 현장 방문 때 미니밴에 박 시장이 타게 됐다. 대개 미니밴은 상석이 앞자리라 시장이 나중에 타야 한다. 박 시장이 가장 먼저 타려 하자 누군가 ‘시장님은 나중에 타셔야죠’라고 말하자 박 시장은 ‘바쁜데 내가 먼저 타지’ 하고 맨 뒷자리 맨 구석 자리로 먼저 가서 앉았다. 그런데 다른 차량으로 이동했던 일행 2명이 차량을 놓쳐 미니밴에 와서 ‘태워 달라’고 하자, 박 시장이 맨 뒷자리 창문 쪽으로 더 바짝 붙어앉으며 ‘타라’고 했다.”
박 시장은 출장 기간 내내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을 보여줬다. 평일은 물론 토·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유럽의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들을 찾았다. 덕분에 서울시 공무원 등은 출장 기간 내내 ‘새벽별 보기 운동’을 해야 했다.
출장 중 박 시장이 꺼낸 구상들에 대해 몇몇 공무원이 ‘법률적 근거가 없다’ ‘예산이 없다’ ‘전례가 없다’는 식으로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온화하던 박 시장이 단호했다.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 줄게요. 검토하세요.”
박 시장은 지난달 17일 저녁 유럽 출장을 마무리하면서, 기자들에게 남은 임기 동안 ‘올바른 결정이라면 반대가 있더라도 추진하겠다’는 뜻을 에둘러 밝혔다. 올해로 12년째 시장직을 수행하는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과의 면담 내용을 전하는 형식을 빌렸다.
박 시장은 “저는 지난 1년 동안 공무원들과의 관계, 행정 프로세스 등을 익히고 배워야 하기에 신중하게 접근했다. 들라노에 시장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용기 있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과 충분히 토론하고 설득하고, 많은 사람이 반대하더라도 올바른 결정이라면 제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순간 박 시장이 지난 1년간 되뇌었던 ‘아무것도 안 한 시장’에서 ‘착한 불도저’로 바뀌는 느낌을 나는 받았다.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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