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혁 경제부 기자
몇해 전 한 검찰 간부와의 저녁식사 자리. 다른 일행을 기다리며 먼저 맥주를 한잔하고 있던 그 간부가 입을 열었다.
“이 기자, 검찰이 왜 조폭(조직폭력배) 수사를 경찰에 맡기지 않고 직접 하는 줄 알아?”
“글쎄요. 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게 말이야, 하늘 아래 두 조직은 있을 수 없는 법이거든.”
“하하하. 말 되네요.”
“이게 농담 같지만 농담이 아니야. 솔직히 검찰이 그 조직보다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잖아. 검사들이야 그 안에만 있다 보니 그것을 당연시하며 살고 있는 것이고.”
한참 동안 잊고 지내온 이 에피소드가 떠오른 건, 최근 잇따라 벌어진 검찰 관련 사건들 때문이다. 10억대 뇌물 부장검사, 피의자와 성관계한 막내검사, 개혁을 외치며 뒤로는 조직에 아부한 평검사, 중수부장과 ‘개싸움’을 벌인 검찰총장, 검사 성관계 여성 사진 무단열람 의혹 검사들…. 그 요지경 속 사건들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는 총장과 중수부장의 충돌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그 대목에서 ‘검찰조직 이야기’가 생각난 것이다.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삼는 검찰 조직에서, 모든 검사들의 아버지 격인 검찰총장이 자신의 참모이자 중간보스인 중수부장과 난투극을 벌인다? 그것도 언론을 불러놓고 공개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심재륜 검사장이 김태정 장관 등 수뇌부에 반기를 들었고, 지난해에도 ‘파마머리’(김준규) 총장이 대검 참모들의 집단 사의표명 등 해프닝 끝에 불명예 퇴진했다. 하지만 이번엔 참모장(대검 차장)과 참모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사임을 요구받았다는 점에서 유별나다. 얼마나 모자란 총장이었으면 이런 봉변을 당했을까?
하지만 어쩌면 그는 최소한의 양식을 갖춘 리더였는지 모른다. 한상대 전 총장은 일부 조직 구성원들의 뜻을 접한 뒤 자리를 포기했지만, 그보다 더한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뻔뻔하게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방송에서는 올해 초부터 장장 6개월간 파업이 지속됐다. 서울 본사 직원 1600여명 가운데 계약직(400여명)과 간부 등을 뺀 1000명 안팎이 노조원인데 여기서 800명가량이 파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특파원, 휴직자, 연수자 등을 제외하면 90%의 참여율이다. 하지만 압도적인 다수의 불신임에도 김재철 사장은 의연했다. 뉴스데스크 시간을 아예 10분으로 줄였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파업이 일어나면 경영진은 ‘뉴스를 안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사수에 나섰지만, 이젠 아예 뉴스를 포기하고 이를 담보로 조합원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그 결과 문화방송은 단기간에 놀라울 정도로 심하게 망가지고 있다. 저녁 8시로 옮긴 뉴스데스크 시청률이 에스비에스 뉴스 시청률의 반토막 수준에 불과하다.
어디 그뿐인가.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도록 판사들의 재판에 개입한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이고도 꿋꿋이 서초동 대법원 청사 집무실을 지키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 본연의 임무인 ‘인권’ 대신 ‘정권 눈치보기’에 주력해 안팎의 거센 사퇴 요구를 받고도 자리를 보전중인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조직을 망가뜨려 가면서도 자신은 영달을 누리는 이들 ‘3철이’를 풍자한 노래까지 나왔을 정도다.
사실, 한상대가 이들보다 더 나은 인격의 소유자여서 자리에서 물러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개인보다는 조직의 성격과 문화 차이가 진퇴 여부를 갈랐다고 보는 게 더 합당할 듯하다. 그렇다면, 방송이나 사법부, 인권위 구성원들은 조폭스러운 조직문화를 가진 검찰을 부러워해야 하는 걸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순혁 경제부 기자 hyuk@hani.co.kr
[관련 영상] 삼철이송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