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장 임석규
대통령에 당선되면 으레 국민통합을 내세운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랬다. 5년 전 12월19일 밤 11시, 서울 청계광장을 찾아 “저 개인의 승리를 떠나 국민 모두의 승리다. 지지했던 분들, 반대편에 섰던 분들 모두 하나가 되자”고 제안했다.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의례적인 말이었음이 드러났다. 532만표 차, 압도적 승리는 ‘고소영 인사’, ‘강부자 내각’ 등 국정 독주로 이어졌다. 취임 4개월도 안 돼 촛불 앞에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당선 첫마디 역시 국민대통합, 대탕평이었다. 그가 내세우는 ‘100% 대한민국’이 선거에서 이긴 쪽의 상투적 표현인지, 그 이상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이번에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1469만2632표를 얻었다. 박근혜 당선인이 얻은 1577만3128표보다 적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득표를 했다. 5년 전 이 대통령의 1149만표보다 320만표,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1201만표보다 268만표가 더 많다.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1469만표를 문재인 후보 개인의 인물 역량으로 끌어모은 표라고 보긴 어렵다. 민주당이 선거 캠페인을 훌륭하게 해서 나온 표도 아니었다. 안철수가 잠시 비켜 있을 때 문재인과 민주당이 보인 무기력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도 1469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문재인을 찍었다. 이건 ‘박근혜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숫자일 것이다. 박 당선인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의 적극적 반대자들과 마주한 채 국정을 운영해가야 하는 처지다. 박 당선인이 이런 의미를 잘 헤아리지 않으면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역설적으로 그에게 반대표를 던진 ‘1469만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축복일지 모른다. 집무실 벽에 큼직하게 이 숫자를 써놓을 것을 권한다. 몸에 좋은 보약이 될 것이다.
보수 내부에서 그의 입지는 확고하다. 정권교체 지수가 어느 때보다 높았던 이번 선거에서 그가 후보로 나서지 않았다면 보수는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후광도 있다. 그가 다른 쪽을 바라본다고 한들, 보수에서 시비 걸 수 없는 구조다. 그러니 자신에게 표를 던진 1577만3128명은 잠시 잊는 편이 좋다.
그가 ‘반대자 1469만명’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신속한 메시지는 인사다. 대통령이 자기편 사람 쓰는 걸 무턱대고 비판할 일은 아니다. 상식에 맞고 이치에 합당하면 시비 걸 사람 없다. 이런 점에서 그에겐 좋은 반면교사,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고소영’, ‘강부자’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친 인사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임명이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동향인 포항 출신에 형의 친구이자 핵심 이너서클인 6인회 멤버인 최시중씨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했다. 언론인 무더기 해직과 공영방송의 끝 모를 추락을 낳은 방송 장악 시도의 첫단추였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해선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반대 목소리가 컸지만 이 대통령은 재임명을 강행했다.
언론, 인권은 이념과 무관한 보편적 가치이자 민주주의의 기본을 뒷받침하는 영역이다. 최소한 이런 분야의 수장이라도 야권이 수긍할 만한 인물을 임명하는 게 좋다. 아예, 야권을 지지했던 인물 중에서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박 당선인이 외치고 있는 ‘100% 대한민국’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첩경일 것이다. ‘티케이 쏠림’이 극심했던 국정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 감사원장 등 이른바 ‘5대 권력기관장’에까지 ‘100% 대한민국’의 정신을 확대 적용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정치부장 임석규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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