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1963년 3월13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경찰서에 18살 백인 여성이 피를 흘리며 나타났다. 피닉스 시내에서 차량으로 납치된 이 여성은 손발이 밧줄로 묶인 채 사막으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경찰은 곧바로 스물한살 멕시코계 청년 어네스토 미란다를 용의선상에 올렸다. 미란다는 14살 때부터 강도, 절도, 성폭행 등을 저지른데다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성폭행을 하려다 미수에 그친 적이 있었다.
미란다는 2시간 동안 경찰 조사를 받으며 범행을 자백했다. 진술조서에는 ‘자백이 협박이나 형 면제의 약속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법적 권리를 충분히 이해하며 진술했다’는 문장과 미란다의 서명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되자 미란다와 그의 변호인은 경찰에서 한 자백은 강압에 따른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미란다는 1966년 연방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미국 헌법이 보장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 거부권과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침해됐기 때문에 미란다의 자백은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 판결 이후 미국 경찰은 범죄 용의자를 체포할 때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으며, 지금부터 말하는 모든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라고 ‘미란다 원칙’을 알리고 있다.
우리나라 수사기관도 1997년 1월부터 피의자를 연행하거나 체포·구금할 때 미란다 원칙을 알려주고 있다. 이를 알려주지 않고 받아낸 진술은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미란다는 뒤늦게 성폭행 증거가 드러나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해야 했지만, 경찰이 피의자를 붙잡을 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함으로써,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인이라 하더라도 인권은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50년 전 미국에서 벌어진 미란다 사건을 꺼낸 것은 서울 강남 대치동 탄천운동장 넝마공동체 철거 과정의 인권침해 논란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는 강남구가 넝마공동체를 강제철거하는 과정에서 넝마공동체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발표했다. 강남구는 “적법한 행정행위를 인권침해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명예훼손 소송도 검토하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시유지인 탄천운동장을 무단으로 점유해 다른 시민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에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남구의 설명대로 넝마공동체의 시유지 점유는 불법이다. 하지만 탄천운동장 무단점유는 이번 논란의 핵심이 아니다. 시유지 불법점거와 인권침해는 별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철거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했는지 여부다.
온갖 주장과 해석을 걷어내면, 강남구가 지난 11월 강제철거를 하면서 주민 출입과 음식물 반입을 통제해 생존권을 제한했고 11월 말 비 오는 날 새벽에 철거를 해 유엔 국제인권규약의 강제퇴거 금지 원칙을 어겼다는 게 팩트다.
인권을 시민의 삶 속에 구현하는 인권도시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중요한 시정 목표다. ‘인권도시 서울’의 구현을 위해서는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인권 감수성’이 중요하다. 법과 규정만 고집하는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을 할 뿐 자신이 시민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 인권침해 지적에 대해 ‘불법점거를 바로잡았다’는 강남구의 주장이 그런 사례다.
넝마공동체 인권침해 논란은 존엄과 가치, 자유와 권리 같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가 인권이란 점을 새삼 일깨워준다.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쪽에선 ‘불법점거자에게 무슨 인권이냐’며 반론을 펴겠지만, 미란다 사건처럼 ‘인권은 원래 그런 것’이다.
권혁철 사회2부 수도권팀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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