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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권태선 칼럼] 민주당, 미래는 있는가

등록 2013-01-02 19:23

권태선 편집인
권태선 편집인
흔히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국민 수준과 같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정치의 수준은 언제나 국민의 수준을 밑돌았던 것 같다. 해방 이후 현대사는 우리 국민이 고비마다 수준 이하의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일어선 투쟁의 역사였다. 세계적으로 독재정권과 부패한 체제에 항거하는 민중투쟁의 봉화 구실을 했던 4·19 혁명, 박정희 독재체제를 끝장내는 기폭제가 됐던 부마항쟁, 민주주의를 죽음으로 지켜내려 했던 광주민주화운동, 군부정권 시대를 마감하게 만든 87년 6월항쟁 등 역사는 정치가 아닌 국민의 힘에 의해 전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준 새로운 정치의 기회가 무산되거나 왜곡된 것은 그를 담지해야 할 정치세력이 엄혹한 조건을 무시한 채 순진한 낙관론에 빠지거나, 공적 대의보다는 사적 이익에 매몰돼 시대적 소명을 방기하거나, 준비 부족으로 자멸한 탓이었다. 5·16을 부른 민주당 정권, 군부정권을 연장시킨 87년 민주세력의 분열, 이명박 정권을 초래한 노무현 정권의 미숙함 등이 그 예다.

이번 대선 결과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최근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고 머리를 숙였다. 선거 패배에 대한 민주당의 무거운 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일 터이나, 바로 그 발언 속에서 선거 패배의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번 선거는 민주진보진영으로선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가 아니라 ‘결코 져서는 안 되는 선거’였다. 그런데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로 상황을 파악했으니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진 것이다. 선거 과정에 상당한 역할을 한 한 원로는 민생현장에서 접하는 분위기 등을 전하며 여러 차례 경고음을 내고 적극적 조처를 요구했음에도 민주당 쪽은 숨은 표 따위를 들먹이며 할 바를 다하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단일화 과정이 전혀 아름답지 않았음에도 단일화만으로 모든 게 해결된 듯이 새로운 정치에 대한 비전도, 기득권을 내려놓는 가시적 조처도 내놓지 않았다. 당의 현장조직마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50대의 이반 움직임을 감지조차 못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이룩한 48%의 득표는 변화를 바라는 국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지 민주당의 실력이 아니다. 과거 선거에 무관심했던 젊은층은 스스로 투표독려 운동에 나섰고, 끔찍하게 왜곡된 언론환경을 돌파하기 위해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활용해 정보를 전달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등 눈물겨운 노력도 벌였다. 국민들은 새 정치의 기회를 열기 위해 온 힘을 다했건만 정작 민주당이 전력을 다하지 않아 그 기회를 걷어차 버린 셈이다. 많은 국민을 멘붕상태에 빠뜨린 민주당의 책임은 석고대죄로도 부족하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의 태도는 어떤가. 입으로는 뼈를 깎는 자성 따위를 말하지만 기득권 한 오라기도 내려놓을 자세가 아니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려는 몸부림도 찾기 어렵다. 비대위원장 논의조차 국민이 아니라 당권 경쟁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는 모양새다.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도 여당과 동조해 지역구 예산 챙기기 등 구태를 반복했다. 이래서는 민주당에 미래가 없다.

이번 선거는 스스로 준비하지 않은 채 상대의 실책에 따른 반사이익과 안철수 현상 같은 외부의 힘에만 기대서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것은 유색인 비율 증가 등 인구통계학적 이유보다는 제대로 된 비전이 더 큰 구실을 했다. 평균적 미국인의 미래를 더 튼튼히 하겠다는 그의 비전은 중간층을 끌어들였다. 민주당 역시 다시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제대로 된 비전 마련에 나서야 한다. 비전은 관념이 아니라 현장에서 나온다. 국민들의 고통과 불안의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비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무너진 당의 현장조직을 되살리고 기층으로 들어가야 한다. 5년은 결코 길지 않다. 낭비할 시간이 없다. 또 다시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으려면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권태선 편집인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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