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석규 정치부장
박근혜 당선인의 최근 행보에서 두드러지는 건 폐쇄성이다. 인사에선 보안과 비밀을 우선시한다. 유능한 인물을 고르는 일보다는 언론이 지목하지 않은 인물을 찾아내 깜짝 발표하는 게 인사의 본령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비칠 정도다. 인수위에도 비밀엄수를 첫손에 당부한 모양이다. 비판이 적지 않은데도 그토록 보안에 집착하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법하다.
박 당선인의 인사를 보면 몇가지 특징이 있다. 웬만하면 아는 사람, 이리저리 연결되는 사람을 쓴다. 2인자는 두지 않는다. ‘입이 가벼운 촉새’는 아예 배제하며, 언론에 거명된 인물은 가급적 쓰지 않는다. 아는 사람을 선호하는 건 인지상정이니 한편으론 이해가 간다. 살아오면서 겪은 숱한 배신의 기억 속에 ‘그래도 믿을 사람은 아는 사람’이란 생각이 확신으로 굳었을지 모른다. 2인자를 좀체 용납하지 않던 아버지가 결국 2인자에게 당했다는 기억은 2인자를 멀리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인사에서 보안을 강조하는 이유도 짐작이 간다. ‘깜짝 인사’를 하지 않으려면 후보 서너명의 이름을 언론에 띄운 뒤 국민 여론과 언론의 평판 등을 보고 낙점하는 방법이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검증이 이뤄질 것이므로 실패한 인사를 할 확률이 낮아진다. 다만, 인사권을 행사하는 맛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검증 과정에서 인사권을 국민과 나눠 갖는 셈이기 때문이다. ‘깜짝 인사’는 인사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윤창중 대변인이 들고 왔던 밀봉 봉투엔 ‘인사는 내가 한다. 인사권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나만의 영역이다’라는 당선인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 보였다. 앞으로 인사 대상자들은 국민 여론이나 언론의 평판 따위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당선인의 눈에 들기 위해 머리를 조아릴 것이다. ‘깜깜이’가 된 국민들은 섭섭할 노릇이지만 공직자들이 당선인에게 굽히는 허리의 각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밀봉된 인사봉투는 왕조시대 임금이 내리는 임명장인 교지를 닮았다.
당선인의 추상같은 함구령에 인수위원들의 입까지 ‘밀봉’되더니 업무보고 브리핑조차 사실상 봉쇄됐다. 마치 인수위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도 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굳게 다문 인수위원들의 입에서 국론통일, 총화단결 따위의 1970년대식 구호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듯싶다. 혼선 방지를 이유로 들지만 그것만으론 설득력이 약하다. 여기에도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국가 주요 정책을 결정하려면 토론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공론화가 필수적이다. 언론 브리핑은 공론화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보도를 통해 내용이 알려지면 이를 토대로 각 분야 전문가들과 이해 당사자들, 국민들의 갑론을박 속에 타당성과 현실성이 검증된다. 브리핑을 하지 않거나 시늉만 내겠다는 것은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겠다는 발상이다. ‘결정은 내가 한다. 알아서 결정할 테니 당신들은 따르기만 하라’는 복종명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당선인은 선거기간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겠다고 거듭 약속한 바 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소싯적 청와대에서 아버지를 보며 제왕적 대통령제의 정점을 목도했던 당선인은 그것의 해악과 함께 달콤함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새누리당 시절에도 ‘환관권력’ ‘1인 사당’ 등 왕조적 리더십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논의의 폐쇄는 결정의 독점으로 이어진다. 폐쇄적 비밀주의는 제왕적 1인 리더십의 출발점이기 십상이다. 박 당선인의 폐쇄적 스타일에서 앞으로의 5년에 대한 불길한 징조를 읽어내는 게 불온한 상상력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임석규 정치부장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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