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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명수의 사람그물] 고용노동부를 해체해 달라

등록 2013-01-14 19:18수정 2013-01-14 19:21

이명수 심리기획자
이명수 심리기획자
재판정에서 내 분신이 되어야 할 변호사가 갑자기 검사로 빙의한 듯 준엄한 표정으로 내게 죄를 물으면 어떨까. 혹은 오래전의 국선변호인처럼 심드렁한 자세로 ‘선처를 바랍니다’ 따위만 남발하면 어쩌나. 그 당혹감과 공포와 좌절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불행하게도 현실세계에서 노동자를 대변해야 할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가 바로 그렇다고 나는 느낀다.

노동자가 목을 매고, 철탑에 오르고, 찬 바닥에서 노숙하며 제발 내 말에 한번만 귀 기울여 달라는 현장엔 경찰과 용역과 정치인만 눈에 띌 뿐 노동부는 어디에도 없다. 흔적조차 없다가 기껏 한다는 짓이 검사로 빙의한 듯한 변호사 노릇이다.

지상에선 길이 없어 하늘에 오른 노동자가 고공농성하고 있는 현장을 방문한 여당 원내대표는 ‘왜 이렇게 올라가서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혀를 찬다. 표창 수만개를 사람들 가슴에 던지는 무책임한 말이지만 정작 본인은 무슨 문제냐는 듯한 태도다. 이런 때 노동부는 그런 정치인을 향해 ‘왜 정치를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고 심리적 귀싸대기를 날려줘야 하는 게 맞다. 노동자를 보호하고 같은 편이 되어 주라고 있는 부서가 노동부이므로 그렇다.

하지만 노동부의 생각과 행동은 전혀 반대다. 노동부가 노사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기계적 균형성을 앞세워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거의 막말을 내뱉는다. 목숨을 담보로 한 투쟁은 정당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며 자살한 노동자들에 대한 애도 한번 없이 ‘어떤 경우에도 인명을 포기하는 극단적 선택은 옳지 않다’고 훈계질한다.

조금 과장해서 노동부의 기본 임무를 엄마성의 개념으로까지 확장해 본다면, 밖에서 의문사하거나 자살한 자식이 있는 엄마가 균형잡힌 수사만을 강조하거나 인명을 경시하는 극단적 선택을 한 자식을 나무라는 격이다. 자식의 죽음 앞에선 어떤 엄마도 그런 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란 존재는 모든 자식에게 최후의 심리적 보루가 된다. 내가 무슨 짓을 했든 어떤 상황에 있든 무조건 나를 지지하고 내 편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 존재. 그런 최후의 보루를 확보하지 못한 사람은 제대로 살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사회적 영역에서도 그런 엄마성 있는 존재는 꼭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적 합의가 가능해지고 목숨까지 버리는 극단적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언감생심. 노동부더러 노동자의 엄마가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의 엄마성은 보여줘야 노동자가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동자에게 노동부는 우리 편이 아니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노동 관련 1인시위를 해도 국회나 경찰, 인수위, 공정거래위원회 앞으로 가지 노동부 쪽으론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노동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지금 노동부에서 치중하고 있는 대부분의 정책과 태도는 기업고용부를 만들어 그곳에서 추진하고, 노동자들 편에서 그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보듬어주는 곳으로 노동인권위원회 같은 별도의 독립기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은 얼토당토않은 것일까.

올해 초 통계청이 발표한 임금노동자 수는 2200만명에 이른다. 경제활동인구가 2500만명이라니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라는 말이다. 다르게 말하면 노동부가 특정한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부서를 넘어선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노동부가 최후의 심리적 보루가 되지 못하는 사회가 집단적으로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건 자명하다. 일당독재의 면피용으로 존재하는 관제야당처럼 노동부가 노동자들에게 생색용으로만 존재하고 실질적인 최후의 보루가 되지 못한다면 해체하는 게 백번 맞다. 그래야 새로운 길이 생긴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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